중국
  • 【禁聞】韓國記者會 要求驅逐中共外交官   한국 사단법인, 중공 외교관 추방 요구   한국 파룬따파(法輪大法) 학회가 7월 20일, 주한 중공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주한 중공 대사 추궈훙(邱國洪), 정무 참사관 천사오춘(陳少春), 삼등서기관 원룽(文龍) 등이 파룬궁 수련인의 7·20 반박해 행사를 방해한 것을 비난하면서 이들 3명의 외교관을 추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파룬따파 밍후이 사이트(明慧網) 보도에 따르면 7월 17일, 한국 파룬궁 수련인들은 서울광장에서 파룬궁 박해 반대 범국민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행사 개최 전 추궈훙은 정무참사관 천사오춘을 파견, 한국 외교부에 찾아가 행사를 취소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한국 파룬따파학회 오세열 대변인은 추궈훙 등의 행위가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이자 한국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한국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이들을 마땅히 영구 추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후더화, 옌황춘추는 당의 것이 아니다   중국 자유파 잡지 옌황춘추(炎黃春秋)가 중국 예술연구원에 강제로 편입된 사건의 파장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 옌황춘추 부사장 후더화(胡德華, 중공 전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의 아들)는 7월 26일, 잡지사를 점거하고 있는 외부인들에게 잡지사를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은 세금 납부 마지막 날이었고 후더화는 재무 담당자를 대동하고 잡지사에 도착해 재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잡지사를 강제 점유한 사람들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   후더화는 그들에게 “사무실이 내 것인데,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들어 왔나?”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후더화는 이날 따지웬(大紀元)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옌황춘추는 국영기업이 아니고 당이 만든 것도 아니다. 옌황춘추의 자산은 모두 옌황춘추의 직원들이 25년을 하루 같이 노동을 하여 쌓은 것이다. 만약 서류 한 장이라도 가져간다면 이건 약탈행위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국민 수백 명, 연대서명으로 옌황춘추 지지   한편 중국 민간에서도 옌황춘추를 성원하는 연대서명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유 아시아 방송 보도에 따르면 7월 26일까지 500명의 학자와 독자가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연대서명 호소문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옌황춘추는 적지 않은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수많은 감춰진 진상을 밝힘으로써 역사의 진면목을 바로잡아 국민의 지혜를 여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중국 예술연구원은 이런 엉큼한 수단으로 잡지사를 압살하려 한다. 이는 바로 공자가 춘추를 적으니 난신적자가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 7월 27, 2016
  • 【微视频】肯德基事件中爱的是哪一国   [자오페이]  7월 20일, 푸양(濮阳)시 공안국은 KFC 가게를 포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던 3명의 젊은이를 구속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남중국해 중재판결 이후 중국에 국수주의가 확산하면서 발생한 KFC 불매 황당극은 정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런 황당극은 중국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장쩌민시대인 1999년부터 일어난 근거 없은 외세 배척 물결은 사실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주를 받은 정치운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치운동은 마오쩌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에, 그 역사는 바로 중국공산당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1966년 7월 8일, 마오쩌둥은 우한(武汉)에서 부인인 장칭(江青)에게 편지로 ‘천하대란(天下大乱)은 천하대치(天下大治)에 이르는 길이다. 7, 8년이 지나면 또 한 차례 온다.’고 말했는데 즉 7~8년에 한 번씩 정치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외세를 배척하는 정치운동은 중공이 국내 불만을 외국을 향해 집중시키는 도구이기에 중공은 일정한 시간마다 한 번씩 정치운동을 일으킵니다.   한번 돌이켜 봅시다.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을 오폭했습니다. 그러자 1999년 5월 8일부터 중국각지에서는 중공의 선동 하에 일련의 대형 퍼레이드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2008년 4월, 프랑스가 티베트 인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프랑스 까르푸 중국 체인점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습니다.   2012년 8월, 일본이 댜오위다오(钓鱼岛) 국유화를 선포하자 중국민중은 거리에 나가 항의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도시의 시위행렬은 일본기업과 일본제품을 겨냥해 폭력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도대체 어느 나라를 사랑하는가? 박살낸 일본제품은 중국인의 돈으로 산 것이고 태워버린 자동차는 모두 중국인이 보험을 들었기에 마지막에 손해를 보는 것은 모두 중국인입니다.   사실 ‘애국’의 개념을 분명하게 말하자면 아주 쉬운 것이지만 중공이 왜곡한 ‘애국’의 관념을 정리하려면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공산당에는 원래부터 국가개념이 없다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공산당선언’에서는 ‘노동자 계급은 조국이 없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말했습니다. 공산주의는 국가를 논하지 않고 형제를 논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베트남과 소련에 영토를 팔아먹은 이유인데 공산당은 국가의 개념이 없습니다.   공산당은 국가의 개념이 없는데 왜 중국인을 선동해 반일, 반미, 반프랑스를 할까요? 당연히 공산당은 당신에게 애국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를 적대시하라고 선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의 투쟁철학과 통일전선이론인데 가상의 적 하나를 만들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추궁 받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정치운동 중에서 왜곡된 관념을 주입시키는데 예를 들면 ‘인권은 좋은 것이 아니기에 당신은 가질 생각을 말라’는 관념입니다.   우리는 다시 ‘나라’ 개념을 말하겠는데 이 의미는 많습니다. 가장 통속적인 개념은 바로 정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나는 나라를 사랑하는데 이 나라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경우에 나라는 바로 정권을 가리킵니다. ‘중화민국’이라는 명사도 정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나라’라는 것은 또 영토개념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화민국은 베고니아를 닮았다고 말할 때 중화민국은 영토를 가리킵니다.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문화와 민족의 ‘귀속처’입니다. ‘중국’이라는 개념은 바로 민족과 문화를 포괄합니다. 해외의 많은 화인들이 왜 중국인일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중화문화를 전수하고 계승하였기 때문인데 이 개념은 당나라 때부터 ‘심화(心华)’개념으로 공감을 얻었습니다. 당나라 중초기 대식인(아랍인) 이언승(李彦升)이 과거시험을 보러 왔는데 조정에서는 의론이 분분했습니다. “오랑캐는 사악한 일에나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뜻은 외국인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최후에 진암(陈黯)이 ‘심화(心华)’란 문장을 써서 정론을 내렸습니다. 즉 그가 어떻게 생겼던지 중화예의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는 곧 중국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의 개념입니다.   고대 바빌론, 고대 이집트는 모두 고대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5천년 역사에서 우리는 당송원명청(唐宋元明清) 등 많은 조대를 겪었어도 우리는 역시 중국인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중국공산당 통치하의 사람이 중국인인 것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 내려온 문화의 공동체가 바로 중국인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진정한 중국인이라면 전통문화를 적대시하는 공산당 당문화를 배척하고 중화전통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7월 26, 2016
  • 【禁闻】中共军方密集换将为哪般?   [앵커] 7월로 접어든 이후 중공 군부에서는 장령(장성과 영관)급 인사이동이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적어도 31명의 장성이 새로운 직무를 부여받거나 새로운 직무를 겸직 발령 받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일주일 만에 두 차례 발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부패도 계속되어 공군 정법위원 톈슈쓰(田修思)가 낙마했습니다. 군부의 대규모 움직임은 무엇 때문일까요?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기자] 중공 관영언론 보도에 따르면 7월 2일부터 7월 20일까지 당국은 적어도 31명의 고위급 장령의 직책을 승진시켰습니다. 내용을 보면 중장 1명, 소장 19명, 대령 11명입니다.   새로운 직책을 얻은 31명의 장령 중 신임 사령관과 부사령관은 6명입니다. 그중 상하이(上海) 경비사령관 허웨이둥(何卫东) 소장은 서부전구(西部战区) 육군사령관으로 임명됐다가 일주일 후에 서부전구 부사령관 겸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작년 베이징 9·3 열병식에 참가했던 전 선양군구(渖阳军区) 공군참모장, 48세 창딩추(常丁求)는 남부전구 부사령관으로 승진했는데, 이는 현역 최연소 부사령관 발령입니다.   그리고 제41 집단군(集团军), 제26 집단군, 제1 집단군 등도 지휘자가 교체됐습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远)은 이미 낙마한 전 군사위 부주석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의 잔여세력을 계속해서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탕징위안, 시사평론가] “궈보슝과 쉬차이허우는 매관매직에다 수하들을 대량으로 발탁했는데, 궈전강(郭振刚)은 심지어 전군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아버지 궈보슝이 발탁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죠. 그가 군대 내에 이렇게 많은 심복을 길러서 이렇게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다면 정변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이건 시진핑에게 의문의 여지없이 심각한 위협입니다.”   사실 궈보슝, 쉬차이허우가 정변을 일으킨다는 건 단지 떠도는 풍문이 절대 아닙니다.   올해 5월 25일, 중공 해방군보는 이런 평론을 실었습니다. “고급 간부의 높은 신분과 권력으로 빚어지는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며, 정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위험성이 더욱 크다. 궈보슝과 쉬차이허우의 부패 문제가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이건 그들 문제의 핵심이 아니며, 핵심은 그들이 정치적 제한선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탕징위안은 시진핑이 자신을 보호하거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군권이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그는 시진핑이 우선적으로 하려는 것은 군권을 더욱 장악하는 것이고 이는 장쩌민 파벌 세력을 모두 제거하기 위함이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탕징위안] “그는 위에서 아래까지, 고위층에서 중위층, 심지어 하층까지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이들 장쩌민 시기에 형성된 부패세력을 깨끗이 제거하고, 동시에 자신이 지휘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7월 26, 2016
  • 《活摘》彰县议会播放 议员同声谴责暴行   -의원들 한 목소리로 중공의 범죄 비난   [앵커] 다큐멘터리 《휴먼 하비스트》(Human Harvest)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인과 양심수들의 장기를 적출, 판매해 이익을 취하는 범죄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현재 타이완의 장화현(彰化县) 의회에서 상영 중이며 많은 장화현 의원이 한 목소리로 이 범죄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기자] 다큐멘터리 《휴먼 하비스트》는 중공 체제가 저지르는 피비린내 나는 생체 장기 적출을 폭로한 작품입니다. 많은 장화현 의원이 관람 후 연대 서명 방식으로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생체 장기 강제 적출을 규탄했습니다.   [라이쩌민(赖泽民), 장화현 의원] “우리 의원들은 연대서명을 통해 생체 장기 적출의 피해자인 중국인들의 성명을 지지합니다. 이 외에 국제재판소를 통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더욱 많은 국제적 활동이 일어나 그런 범죄 행위가 최대의 규탄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라이칭메이(赖清美), 장화현 의원] “강제 적출 이야기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이것은 비인도적일 뿐 아니라 가장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하늘의 이치는 이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박해받은 파룬궁 수련인과 그 가족 20만 명이 중국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장쩌민을 반인류 범죄로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11개 타이완 지역 의회가 그들의 고소를 지지했습니다.   [양전주(阳蓁珠), 장화현 의원] “저는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각종 방식으로 우리 타이완 국민에게 알리기를 희망합니다.”   [정위안위(郑元瑜), 타이완국제장기이식협회 고문] “우리는 짧은 시간 다큐멘터리를 보았지만, 중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생체 장기 적출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생체장기 강제적출에 사실증거가 덧붙여지면서 사건의 진상이 강력하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 7월 25, 2016
  • 北方遭遇暴雨 南方洪水不退   7월초부터 시작한 중국 남방의 홍수가 최근 북방으로 확장되었다. 수요일(20일), 지속되는 폭우는 중국북방의 대부분 지역을 강타하여 베이징, 화베이(华北), 황화이(黄淮) 등의 지역은 폭우와 홍수 주의보를 발령했다.   수요일, 큰비는 베이징의 많은 터널과 입체 교차로를 침수시켰다. 이어서 베이징과 톈진의  징진(京津)고속철도 티켓 판매가 중지되었다.   서우두(首都)공항에서는 항공편 수백편이 취소되어 수많은 여행객이 체류되었다.   [펑샤오우, 서우두 공항 여행객] “우리는 관광하러 베이징에 왔는데 오늘 날씨가 매우 나빠 모든 스케줄을 전부 취소했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공항에 와서 항공편 소식을 기다리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여름 캠프를 신청한 아이들 일부는 예약 스케줄을 취소하기도 했다.   [장후이신, 여행사 직원] “집에 있는 부모들은 지금 아주 조급해 합니다. 아이가 비행기 티켓을 변경하였는지, 비행기가 몇 시간이나 지연되는지 등을 이곳저곳에 물어보고 있습니다.”   톈진 시내는 침수가 심각하여 당국은 이미 주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빙하이(滨海)공항은 금요일 새벽부터 모든 항공편의 비행기 이착륙이 정지되었다.   베이징, 톈진, 산시, 허난, 허베이, 산둥 등 지역도 광범위 폭우나 집중호우가 나타났다. 이것은 2016년 여름에 들어서서 화베이, 황화이 일원에 내린 비 중 가장 큰 비다.   남방의 후베이, 후난, 충칭도 홍수가 계속되고 있다. 관영보도에 따르면 폭우 때문에 후베이 35개 시와 현의 주민 80여 만 명이 피해를 입고 최소 6명이 사망했다. 허베이성은 최소 1명 사망에 34명이 실종되었다. 하지만 실제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NTD 뉴스 리신(李欣) 종합보도​ 7월 22, 2016
  • 【禁聞】問責條例發佈 評:為審江立案準備   [앵커] 시진핑 당국이 며칠 전 관원 ‘문책조례’를 정식으로 발표하고 각 지역 각 기관에 시행을 지시했습니다. 이번 조례는 중점 문책 대상을 ‘핵심 소수 중의 핵심 소수’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평론가는 목표가 대단히 분명하다며 이번 문책은 바로 시진핑이 전 중공 총서기 장쩌민의 입건을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자] 7월 17일, 문책조례가 정식으로 발표됐습니다. 내용 중에는 특히 각 지방 지도층 관리들의 반부패 활동이 소극적일 경우와 관할 범위 내에 만연한 부패 세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않는 경우 등등의 문책 상황이 명시됐습니다.   조례 중에 특별히 규정된 것은 ‘종신(終身) 문책’을 실시하여, 직무태만, 책임회피 등 죄질이 나쁘거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는 그 책임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 발탁됐건 퇴직했건 상관없이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화 사이트(新華網)는 이 조례의 대상이 각급 당 조직이지만, 중점적으로 겨냥한 것은 핵심 소수라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핵심 소수 중의 핵심 소수’를 중점으로 삼는다고 밝혔습니다.   분석가는 ‘핵심 소수 중의 핵심 소수’라는 목표가 대단히 명확하다며 이른바 문책조례는 바로 장쩌민을 위해 맞춘 ‘두꺼비 옷’이라고 말했습니다.   [란수(藍述), 재미 시사평론가] “이 문책조례의 주 타겟은 바로 장쩌민입니다. 왜냐하면 장쩌민이 집권한 전체 기간에 그의 파벌은 부패로 단결했습니다. 그들은 체계적이고 권위적으로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부패 행위를 방관하고 부추겼는데, 장쩌민의 말로 하자면 소리 소문 없이 큰 재산을 모은 겁니다.”   재미 시사평론가 란수는 이런 상황에서 만약 장쩌민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다른 관리의 책임까지 해결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습니다.   문책조례는 6월 28일 시진핑이 개최한 중공 중앙정치국 회의의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조례에는 특히 직무태만과 책임회피로 인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거나 대중의 강렬한 반향을 초래했거나 중공의 집권에 필요한 정치적 기초를 훼손한 경우 책임을 엄하게 추궁한다는 내용이 명시됐습니다.   분석가는 문책조례가 6월 말에 통과됐고 현재는 집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시진핑이 장쩌민파의 잔여세력을 소탕하는데 이용하는 일종의 무기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란수] “이번에 통과된 문책제도를 아주 크게 보면 제 5대 지도자의 결심을 나타냅니다. 그가 문책을 하려 하는데, 그의 문책이 겨냥하는 가장 중요한 방향, 칼끝은 바로 장쩌민계의 관료입니다. 물론 가장 주요한 목표는 바로 장쩌민과 쩡칭훙(曾慶紅)입니다. 왕년에 권력으로 부패를 부추기고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벌여서 나타난 결과를 반드시 문책할 겁니다.”   ... 7월 22, 2016
  • 【微视频】南海问题〝攘外必先安内〞   [자오페이] 남해 재판결과에 대해 ‘핫 이슈 토론’에서 일부 논의했습니다만 오늘은 미진한 부분을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전해지는 유언비어가 하나 있는데요, 1987년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남중국해 영유권을 논할 때 난사군도가 필리핀과 더 가깝다고 말하자 덩샤오핑(邓小平)은 필리핀이 중국과 더 가깝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헛소문입니다. 1987년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니까요.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 정책, 즉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반드시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다는 정책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역대왕조의 눈부신 역사를 관찰해보면 모두 ‘양외필선안내’였습니다. 우리는 한조(汉朝)의 사례 하나를 말하겠습니다. 기원전 200년, 유방(刘邦)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적을 얕잡아보고 무모하게 돌진하다 바이덩(白登)산에서 흉노에게 포위되어 대패했습니다. 이것은 한조의 치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후 한조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바로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 후 외적을 물리쳤습니다. 우선 진평(陈平)과 주발(周勃)은 여(吕)씨의 반란을 섬멸합니다. 그 후 한문제(汉文帝)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력을 회복시켜 국력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런후 한경제(汉景帝)는 ‘7국의 난’을 소탕하여 평정하였습니다. 이로써 한조는 ‘내부 안정’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했고 비로소 한무제가 북흉노를 공격하여 물리치는데 성공했습니다.   14년의 항일전쟁에서 장제스(蒋介石) 선생도 이렇게 했습니다. 1931~1937년 국민정부는 장제스 선생의 영도 하에 아래의 몇 가지 큰일을 하였습니다.   1. 교육혁신입니다, 장제스 선생은 신생활운동을 시작하여 ‘예(礼), 의(义), 염(廉), 치(耻)의 미덕을 생활 속에서 일관되게 지키게 하는 동시에 국민생활에 군사 문화를 도입했습니다. 중국인이 우측통행하는 규칙은 바로 장선생이 정한 것입니다.   2. 국력을 발전시켜 전쟁수요에 대처했습니다, ‘국방설계위원회’의 <전쟁시 연료와 석유의 통제계획>, <식량저축과 통제계획>은 항일 전쟁에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3. 통일 화폐와 경제발전입니다.   4. 공업건설, 실업발전, 특히 도로, 철로와 통신설비의 건설은 전쟁에 대해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5. 후방 활동 근거지를 확립하여 항일전쟁의 지구력을 강화했습니다. 1935년 장제스 선생은 스촨(四川), 구이저우(贵州), 광시(广西)를 시찰하고 스촨을 민족의 부흥기지로 확립했습니다.   6, 군대를 정비하여 독일식 신군을 설립했습니다.   7. 공군을 설립하고 해군에 장비를 갖추었고,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8. 중공 반역집단을 소멸했습니다.   만약 플레이보이 장쉐량(张学良)이 교란하지 않았다면 장제스 선생은 2년 후에는 독일식 기계화 사단의 탱크와 대포 장비를 완전히 갖추었을 것이고 ‘상하이 전투’ 결과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장제스선생은 중국을 영도하여 동맹국과 참여하여 2차 대전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포츠담 선언’, ‘카이로 선언’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점령한 영토를 반드시 전부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남중국해의 섬 20여개를 베트남에 팔았기 때문에 중국은 남중국해의 11단 주권을 9단 주권으로 축소했습니다. ... 7월 21, 2016
  •  【禁闻​】炎黃春秋遭整肅 杜導正女兒透詳情   중국의 개혁 언론 옌황춘추(炎黃春秋)에 또 다시 액운이 닥쳤습니다. 사장 겸 총편집(편집장) 두다오정(杜導正), 부사장 후더화(胡德華)와 총편집 쉬칭취안(徐慶全)이 며칠 전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고 중공 문화부 산하 중국예술연구원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4일, 옌황춘추는 중국예술연구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7월 14일, 중국예술연구원은 6월 27일, 당정(黨政) 지도자 연석회의를 열어 구레이레이(賈磊磊)를 옌황춘추 사장으로, 하오칭쥔(郝慶軍)을 편집장(법적대표자)으로 임명했다고 인사발령 통보서에서 밝혔습니다. (언론잡지사의 경우 사장이 없으면 총편집이 편집과 경영을 총괄하는 것이 중국의 관례임. 사장이 명목상의 사장인 경우도 마찬가지임. – 역자 주)   전 옌황춘추 비서실장이며 집행주편(執行主編)이었던 두밍밍(杜明明, 두다오정의 딸)은 부사장으로, 집행주편을 맡았던 펑리산(冯立三), 딩둥(丁東)과 총편집 쉬칭취안, 그리고 부총편집 왕옌쥔(王彥君)은 모두 부주편(副主編)으로 임명했습니다. 잡지의 사무위원회(社委會)와 집행주편 제도는 폐지했습니다.(주편은 프로젝트별 상근 편집장 격, 프로젝트별 임시 편집장은 집행주편 – 역자 주)   이에 대해 두다오정의 둘째 딸이며 광저우(廣州) 중산(中山)대학 불어과 교수인 두리(杜莉)는 옌황춘추가 중국예술연구원으로 강제 편입될 당시 쌍방 간에 문서 협약이 있었다며, 현재 그들은 일방적으로 협약을 파기했으니 이는 위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리, 광저우 중산대학 불어과 교수] “당시 그들 산하로 편입될 때 합의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문서 합의의 핵심은 인사권, 재무권, 편집권이었습니다. (옌황춘추는) 이 세 가지 권리를 자주적으로 행사하며 그들은 의견만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검토할 뿐이고 교정의 최종 권한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두리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말했습니다.   [두리] “이번에 그들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그제 오전, 입원중인 아버지께 광전총국(廣電總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사람이 병문안하듯이 과일 종류를 들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좋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더니 마지막에는 본심을 드러내면서 문서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두리의 말에 의하면 문서는 7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고, 고령의 관리가 일단 퇴직하면 지도자 그룹에 들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문서는 옌황춘추와 두다오정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두리] “당시 저희 아버지는 자영업자였고 회사는 완전히 자영기업이어서 정부쪽에는 아무런 직무도 없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국가와는 한 푼도 관련이 없어서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게 타당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특별조치를 얻어 와서 행동을 취했습니다.”   [두리] “그 사람이 왔다 간 직후 예술연구원에서 또 한 사람이 와서 갑자기 문서 하나를 내밀었는데, 바로 임명장이었습니다. 그 후 여러 명이 오전에 잡지사에 와서 직접 명령서를 낭독하고는 직접 내부 네트워크를 통제하고 재무를 장악했습니다. 그 편집장들은 저나 아버지와 의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 7월 20, 2016
  •  【微视频】陈锦华去世 胡锦涛重点出镜   [자오페이] 7월 8일, 전임 전국정치협상위원회 주석 천진화(陈锦华)의 영결식이 바바오산(八宝山)에서 치러졌습니다. 중앙TV 뉴스 화면 속에 후진타오가 7명의 상무위원 뒤를 이어 첫 번째 주요인물로 등장했습니다. 천진화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이 많겠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영결식에 후진타오가 첫 번째 주요인물로 등장한 것입니다.   7월 4일, 링지화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링지화 본인은 매우 정의로운 인물로 평가받았고 그는 후진타오가 국가주석으로 있는 중에 중공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재직했습니다. 이 자리는 비서실장에 해당되며 사람들은 보통 그를 공청단파(团派)의 일원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링지화가 낙마한 후 여러 언론은 그가 저우융캉, 보시라이와 한통속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바로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소식으로 인해 링지화의 낙마로 어느 계파가 손해를 본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게 됐습니다.   7월 8일, 후진타오가 7명의 상무위원 뒤를 이어 첫 번째로 등장하게 배치한 것은 당국이 ‘링지화 사건과 후진타오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링지화는 저우융캉, 보시라이와 한통속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가 형을 선고받은 것이 맞는 것입니다.   중국민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공의 관리를 한꺼번에 총살하면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씩 총살하면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다.” 중공에 부패하지 않은 관리가 없기에 이런 말이 나오겠지요. 전 관리 부패라는 현상은 장쩌민이 시작한 부패치국 체제가 원인입니다. 관리들은 부패특권으로 돈과 권력을 불려가며 서민을 억누르고 공산당의 통치를 유지하였습니다.   부패하지 않은 관리가 없는 이런 현상을 두 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 궈보슝의 매관매직을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의 영도 하에서 돈을 바치지 않은 사람은 승진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부패를 저질러야 합니다. 가장 쉬운 것이 하급 장교에게 관직을 파는 것입니다. 중공의 관리사회 전체는 바로 이런 체계로써 그중에 마지못해 탐오하는 사람도 있고 주동적으로 탐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재미있는 화제를 논의하겠습니다. 반부패 처벌을 받는 관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장파의 사람을 제거한다고 말하지만 링지화는 장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저우융캉, 보시라이와 동맹을 맺은 맹우였을 뿐입니다. 중공 국무원 타이완 사무실 부주임 궁칭(龚清)은 푸젠(福建)성에서 관리가 되어 집안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치대로 말하면 장파와 별로 관계가 크지 않았지만 부패 때문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런 모호한 관계는 이번 반부패가 단순한 계파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훌륭한 의견을 듣기 위해 먼저 우리의 미숙한 의견을 내놓아 보려 합니다. 저우융캉, 정법위서기–파룬궁 박해; 보시라이, 다롄 시위서기, 랴오닝 성위서기, 충칭 시위서기–파룬궁 박해; 쑤룽, 장시(江西) 성위서기–파룬궁 박해; 쉬차이허우, 궈보슝, 군위부주석–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장기적출 참여와 군 내부 박해 혐의; 링지화, 통일전선부장–타이완 동심회, 홍콩 청관회를 조직하여 해외에서 파룬궁 박해.   우리는 현재 모든 부패탐관들의 이력을 꺼내 연구할 수는 없습니다. 낙마한 관리 대부분이 파룬궁 박해라는 이 엄중한 인권 재난의 실행자였습니다. 이 유명한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인에게 고소당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조사단의 조사에 의해 파룬궁을 박해한 죄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선악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고, 하늘의 뜻은 결국 돌아온다, 믿기지 않으면 머리 들고 보아라, 창공이 누구를 용서하였느냐.” 낙마한 이런 사람들은 바로 보응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서 아직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즉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서 공을 세워 잘못을 사면받기를 권고합니다.   7월 19, 2016
  • 中共高层〝谍影重重〞 李克强受命大规模反谍 중국 내부 스파이 사건이 갈수록 늘어나 반스파이 활동 팀장인 리커창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Lintao Zhang/Getty Images)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주축으로 하는 반스파이 활동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내부 스파이 활동이 기승을 부리면서 중공이 망할 징조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 기밀을 팔아넘기는 중공 관리들의 행태는 수많은 자구책 마련방법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홍콩 시사월간지 동향은 7월호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이 2016년 4월 1일부터 개시한 반스파이 활동이 7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외국 주재 대사관, 무역 사무실, 중앙정부 직속 해외기관, 홍콩주재 연락 사무실, 마카오 주재 연락 사무실, 언론사 해외 사무실의 고위층이 반스파이 활동의 주된 대상이 됐다는 겁니다.   ‘서광-16’으로 명명된 중공의 반스파이 활동은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를 팀장으로, 부팀장에 리잔수·마카이, 팀원에 궈성쿤, 창완취안, 리샤오펑 등이 포함됐습니다. 시진핑을 조장으로 하는 중공중공안전사업영도소조의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반스파이 활동의 주된 대상은 4대 기관, 7개 성·시, 17개 부위원회 사무실 등 기관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공산당과 정부의 국가기밀과 금융·경제분야 기밀, 과학기술 등의 외부 누출이 심각한 상황이었으며, 외국 정부기관의 침입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유출이 확인된 기밀만 2250여 건으로 등급별로는 특급·극비 50건, 1급 850여 건이었습니다. 그 사이 중국 내에서 적발된 스파이 사건은 2천여 건으로 차관급, 대령급 등 관리계층이 일으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 7월 19, 2016
  •  【禁闻】 南海仲裁前 中共私下对美承诺克制​   중공, 남중국해 판결 전 미국에 자제 약속   [앵커] 남중국해 중재 판결 결과가 발표된 후 중공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집행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당 언론은 나아가 판결에 대한 과장 보도와 비난에 나섰습니다. 이는 중국 민간의 민족주의를 부추겨 인터넷에는 온통 타도하라고 외치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일부 극단적인 네티즌은 아이폰을 부수고 홍콩 연예인을 욕하는가하면 심지어 “조국이 원하면 바로 입대하겠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기자] 중국인들이 한창 격분하던 7월 14일, 영국 로이터는 남중국해 중재 판결을 앞두고 중공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미국 측에 자제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통보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재 판결 발표 전, 미 국방장관 카터는 필리핀 국방장관 로렌차나에게 전화를 걸어 중공과 미국은 서로 자제력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런 보도는 로렌차나 장관의 말을 인용해 로이터가 전했습니다.   로렌차나는 카터가 필리핀에도 약속을 요구했고 필리핀도 그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리는 중공 정부의 과장된 행동은 사실상 중국 국민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그들이 선동하는 이른바 애국주의 정서는 중공의 집권 명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가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유럽의회 과반수 의원,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 저지 서명   유럽의회가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 저지를 호소하는 성명서를 작성했는데요, 7월 13일까지 서명한 의원이 벌써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파룬따파 밍후이왕(法輪大法明慧網)은 이 성명서가 유럽의회 2016/WD48호 문건이며, 12명의 유럽의회 의원이 발의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성명서는 반인륜적인 강제 인체장기 적출로 돈을 버는 중공의 범죄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의회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성명 발의에 참여한 독일의 유럽의회 의원 아르네 게리케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생체 장기적출이 백만이 넘는 중국인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유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7월 19, 2016
  • 獨家:目擊者曝天津東方器官移植中心“魔鬼暴行〞 목격자는 톈진제1병원 동방장기이식센터에서 생체장기적출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마치 ‘악마의 소굴’ 같다고 폭로했다. (인터넷 사진)   나는 중국인으로서 현재 중국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톈진 제1병원 동방이식센터(天津第一醫院的東方器官移植中心)에서 한동안 근무한 적이 있어서 이 병원과 중국공산당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목격담이 아직도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동포들을 깨우쳐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국공산당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장기이식 수익사업을 진행해   수년 전, 내가 톈진 제1병원 장기이식센터 7층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은 해외에서부터 장기이식환자들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이 이식센터를 소개받고 취직했다. 이 병원에는 장기이식수술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기에 동방장기이식센터로 불렸고 현재까지도 아시아 최대 장기이식센터로 자리 잡고 있다.    ‘장기 이식 중개업’은 완전히 지하에서 진행되는 비밀 작업이다. 직접 겪고 본 일에 근거하여 그 작업 구조를 밝혀 보려 한다.   우선, 중간 브로커가 있다. 한국 최대 병원에 박사학위를 가진 한 저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중국의 한 조선족 남자와 서로 연락하고 거래했다. 이 한국 의사가 이식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이 남자에게 넘겨주면 이 남자는 인맥을 동원해 환자를 톈진 제1병원에 넘겼다. 당시 장기이식 중개 분야는 국가와 국가사이의 직접적 연계가 아닌 브로커들이 중간에 서로 엉켜서 마피아 같은 연락망을 구축한다. 중국에 원정 온 환자들은 대부분 간장과 신장을 이식받고자 왔다. 이식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한국인이 가장 많았고 또 일본인, 대만인 등도 있었다.    둘째로, 해외에서 초빙되는 의사도 있다. 한 한국인이 있었는데 중국에 이식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중국의 모 병원에서는 이 사람을 높은 급여로 한국에서 초빙해왔다. 이 사람은 중국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에게 알려주기를, 자신은 한국과 중국의 2개 국적을 갖고 있는데 해외에 있든지 국내에 있든지 자신은 중국의 합법적인 공민이라고 말했다. 이 2중국적을 가진 한국의사의 손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중국인의 선혈이 묻었을지 모르겠다.   셋째로, 유명인을 이용해 광고하는 방법으로 환자를 속여서 유치한다. 내가 접촉한 한국인 중에 한사람이 나에게 알려주기를, 자신들은 중국의 푸뱌오(傅彪)라는 영화배우가 나오는 광고를 보고 중국에 왔다고 했다.   알아보니 2004년 8월 26일, 유명 연예인이었던 푸뱌오는 베이징 309병원에서 간 검진을 받은 후 27일 엄중한 간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9월 2일 베이징 무장경찰 총병원 이식연구소에서 그는 간 이식수술을 받았으며 집도의사는 선중양(沈中陽)이라는 의사였는데 이 사람은 언론에서 중국 ‘제1 집도의’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선중양은 베이징 무장경찰 총병원 이식연구소와 톈진 동방이식센터 두 곳의 책임자였다.   당시 짧은 1주일이라는 시간 만에 간장 공여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5년 4월 푸뱌오는 간암이 재발했다. 그는 4월 28일 톈진 동방이식센터에서 선중양의 집도하에 두 번째 간이식수술을 진행했으나 8월 30일 사망했다.   푸뱌오는 2차례 간이식수술을 통해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더 살 수가 있었다. 그가 사망한 날짜는 2005년 8월 30일이었는데 2006년 시점에서 한국의 일부환자들은 여전히 유명인 푸뱌오가 이식수술을 했다는 병원 광고로 인해 이 병원을 찾아 왔던 것이다. 그들은 푸뱌오가 이미 사망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 중국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이는  중공이 세계 간 이식환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속였다는 한 사례다.    2006년 3월 선양 수자툰(蘇家屯) 지하 비밀수용소에서 파룬궁 수련인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이 자행되고 있다는 내막이 증인에 의해 해외에서 최초로 폭로되었다. 사실상 2002년부터 2005년 사이는 파룬궁 수련인에 대한 중공 장쩌민 집단의 생체장기적출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후에 언론에 보도된 글을 보고 알았는데 선중양은 산 사람을 간이식 실험에 이용했으며 이래서 적지 않은 사람이 ‘실험용으로 사망’ 했다. 환자가 사망하면 ... 7월 18, 2016
  •  【禁闻】 南海仲裁结果出炉 各方反应激烈             中共军队医院常规性地提供非法疗法   1. 남중국해 중재 결과 발표, 각계 격렬한 반응​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남중국해 사건 중재 결과가 12일 오후에 발표됐습니다. 세계의 예상대로 헤이그 국제법정은 필리핀의 3가지 요구를 모두 들어줬고, 남중국해 구단선(九段缐)에 대한 중국 측의 역사적 권리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중국 측의 인공섬은 200해리 경제수역을 벗어났으며, 중공이 스프래틀리 제도에 인공섬을 건설해 필리핀의 권리와 해양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판결 내용이 발표되자 각계가 잇달아 반응을 보였습니다. 필리핀 정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이 전환점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당면한 남중국해 분쟁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통해 판결을 존중할 것을 쌍방에 호소하면서 이번 판결이 전 세계의 평화와 분쟁 해결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외무대신 기시다 후미오는 이번 판결이 최종 결과로써 법적 효력이 있다며 각국이 마땅히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공 당 언론 신화사도 당일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또 다시 중국 측은 받아들일 수 없고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공 외교부는 중재 법정이 위법이라고 비난하면서 중재 결과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공 정부도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와 관련한 입장을 반복해서 밝히고, 중국인이 남중국해에서 활동한 역사가 2천 년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중국은 가장 먼저 지속적이고 평화적이고 유효하게 남중국해의 도서와 관련 해역에서 주권과 관할권을 행사했고 남중국해에서 영토 주권과 관련 권익을 확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7월 15, 2016
  • 原中国电信董事长常小兵 被双开法办   중공 중기위(中纪委)는 월요일(11일), 전 중국 차이나텔레콤 회장 창샤오빙(常小兵)이 ‘심각한 기율위반 혐의’로 ‘쌍개’(雙開·당적과 공직 박탈)처분을 받고 사법기관에 이송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기위는 창샤오빙이 ‘직권을 이용해 간부 선발에서 특혜를 주고 금품을 챙긴 죄’, ‘직권을 이용 친인척의 경제활동을 도와 이익을 챙긴 죄’, ‘친인척이 그의 직권을 이용해 사익을 도모한 것을 묵인한 죄’, ‘뇌물 수수 죄’ 등을 저질렀다고 명시했다.   창샤오빙은 올해 58세이고, 2004년 11월부터 중국 차이나유니콤 회장 겸 당조서기를 역임했다. 당조서기란 직장이나 단체 별 공산당 조직의 서기를 뜻한다.   작년 2월 5일, 중공중앙 순시조는 차이나유니콤의 일부 지도자와 주요부서의 사람들이 직권을 이용해 청부업자, 공급업체와 결탁하여 금전과 성상납 등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작년 8월, 차이나유니콤과 차이나텔레콤 회장이 자리를 교환했다. 차이나텔레콤 회장 왕샤오추(王晓初)가 차이나유니콤의 회장을 맡고 창샤오빙은 차이나텔레콤의 회장으로 전임되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중기위는 창샤오빙을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창샤오빙은 차이나텔레콤에서 임직시간이 아주 짧기에, 그가 조사를 받게 된 것은 그가 차이나유니콤 회장으로 근무할 때 저지른 비리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여러 외신들은 차이나유니콤은 전 중공 당서기 장쩌민의 아들 장몐형과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중국의 통신 사업은 줄곧 장몐형이 지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상하이 관리들의 최근 낙마와 마찬가지로 이번 창샤오빙 쌍개처리도 장쩌민 일가 정리의 과정으로 분석된다.   창샤오빙은 시진핑의 반부패로 조사 처리된 중국 3대 통신 업체 경영진 중에서 최고위 경영자다.   NTD 뉴스 차오안(乔安) 종합보도   7월 15, 2016
  •  【禁聞】不能說的黨史?中共再反歷史虛無   [앵커] 중공 국무원 뉴스판공실이 6일 개최한 뉴스브리핑에 중앙 당사(黨史) 연구실 부주임 장수쥔(張樹軍)이 참석해 당의 민감한 역사에 대한 연구를 계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며 이른바 역사 허무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소리에 따르면, 중국 전문가들은 ‘장수쥔의 주장은 중공이 공산당 역사 연구에 대한 제한선을 그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자] 중공 중앙당사연구실 부주임 장수쥔은 6일, 국무원 뉴스판공실 뉴스브리핑에 참석해 당의 민감한 역사를 계획적으로 전개해야 하며 이른바 역사 허무주의에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장수쥔은 당의 역사 중 어떤 부분이 민감한 역사인지, 계획적 전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전직 중국 역사학 교수 류인취안(劉因全)은 중공의 이른바 민감한 역사 중 일부를 사실 대로 연구하게 되면 곧 중공의 ‘위대하고 정확하고 광명하다’는 이미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류인취안, 전직 중국 역사학 교수] “마오쩌둥을 예로 들면 정말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공 당사를 절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문화혁명 과정과 6·4 진압에 관해서는 현재까지도 연구를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중국 공산당 수립의 역사를 보면 애국자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세운 것이 전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레닌과 스탈린이 중국을 소련의 식민지로 삼으려고 중국의 일부 매국노, 건달 무뢰배, 가짜 문인들을 매수했고, 이어서 러시아인들이 루블화를 들고 와서는 이런 사람들을 키워서 중국에 공산당을 세웠습니다.”   최근 중공은 당의 민감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을 처벌하여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전 옌황춘추(炎黃春秋) 편집장이며 역사학자인 훙전콰이(洪振快)가 ‘랑야산(狼牙山) 5장사(壯士)’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썼다가 명예훼손 판결을 받았는데요, 법원은 그가 랑야산 5장사에 의문을 제기해 이른바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관’을 손상시켰다고 판결했습니다. 랑야산 5장사는 중공이 ‘항일전쟁 영웅’으로 선전 숭배하는 인물입니다.   훙전콰이의 의심도 장수쥔이 말한바 반드시 반대해야 할 역사 허무주의의 한 예일 것입니다.   최근 몇 년 간 중공은 ‘역사 연구를 이용해 마르크스주의의 지위를 부정하고 중공의 집권 합법성을 부정하는 사상조류’를 역사허무주의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중공의 문헌에 의하면 이런 사조는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과 반성, 그리고 마오쩌둥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됐습니다. 89년 역사허무주의 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은 6·4 톈안먼 사건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중공 총서기에 오른 장쩌민이 가진 연말 첫 번째 연설에서였습니다. 이후 이 개념은 ‘중국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중공 제도의 폐단에 대한 분석, 또는 중공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국내외에서 일어나면 이를 공격하는데 사용됐습니다. 중공은 역사에 대한 평가가 결코 단순한 학술의 문제가 아니며 정치투쟁과 연관되고 심지어 당의 생사존망에 관계된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유명 작가 성쉐(盛雪)는 중공이 비난하는 이른바 역사허무주의가 사실은 중공 역사 연구의 진정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성쉐, 작가] “중공이 지적한 문제는 중국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진정한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역사 유물주의(唯物主義)든 역사 허무주의든 둘 다 현 중국 사회라는 하나의 틀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것들은 모두 중공이라는 권력구조의 제한과 통제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 7월 15, 2016
  • 周永康的〝国师〞曹永正获刑七年  차오융정은 유기징역 7년과 벌금 7300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저우융캉과 그의 친척, 일당들이 잇달아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감에 따라 저우융캉의 ‘어용국사’라는 별명의 역술인 차오융정(曹永正)의 신세도 몰락했다. 이창(宜昌)시 중급인민법원은 7월 8일, 1심에서 차오융정에게 유기징역 7년을 선고했다.    7월 8일 오전, 허베이성 이창시 중급인민법원은 불법으로 토지사용권을 전매, 양도하고 뇌물을 수수한 차오융정에 대해 1심 공개 판결을 내렸다. 차오융정은 불법으로 토지사용권을 전매, 양도한 죄, 뇌물수수죄를 인정하고 병합해 유기징역 7년과 벌금 7300만 위안이 선고됐다.   판결 선고 후 차오융정은 법원의 판결에 복종하고 항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료에 따르면 차오융정은 1959년, 산둥(山东) 칭다오(青岛)에서 출생, 원명은 차오쩡위(曹增玉)이다. 23세에 신장(新疆)대학 정치학과 졸업 후 교사, 출판사 편집인 등으로 근무했으며 후에 이른바 ‘역술 능력’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신장 3대 술사’의 우두머리로서 저우융캉의 ‘국사’라고 불렸다.   앞서 재신망의 보도에 따르면 차오융정은 중석유(中石油 CNPC)에서 근무할 때 저우융캉의 차남 저우한(周涵)을 보살펴준 후부터 저우융캉과 관계가 가까워졌다. 차오융정과 사업상 관계가 밀접한 어느 투자가는 저유융캉이 다른 사람에게 그를 소개할 때 “이 사람은 내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2015년 5월 22일, 톈진시 제1중급인민법원은 저우융캉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때 저우융캉이 5건의 극비문건과 1건의 기밀문건을 불법으로 차오융정에게 건네주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차오융정은 규정을 어기고 많은 유전의 ‘합작개발권’을 취득하여 빈손으로 8.7억 위안(1480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기는 등 거액의 이윤을 도모하여 국가이익에 중대한 손실을 입혔다.   책임편집 카이신(凯欣)​   7월 14, 2016
  • 【禁闻】身份证、手机 成中共隐秘监控器​  – 중공의 국민 감시, 갈수록 교묘화 – 휴대전화 꺼놓아도 위치추적·도청 –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의 “작품”   [앵커] 핸드폰과 신분증은 사람들이 외출할 때 늘 챙기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물건이, ‘감청기’와 ‘위치 추적기’로 사용되어 중국공산당(중공)이 자국민을 감시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중공은 삐걱거리는 정권을 유지하려 국민 감시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감시 수단도 갈수록 은밀하고 다양해져 막으려야 막을 수 없습니다.   [기자] 중공 당국은 2013년 1월 1일부터 자국민에게 새로운 신분증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기존 신분증은 ... 7월 13, 2016
  •  【禁闻】英歌手被拒入境 上海演唱会被迫取消​​   영국의 유명 여가수 제인 버킨이 7월 9일 상하이에서 개최하려던 콘서트가 중공의 비자 발급 거부로 무산됐습니다. 콘서트 관계자는 중공이 버킨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그녀가 중국정부의 ‘인권 침해를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반세기에 걸쳐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영국 가수 제인 버킨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였고 프랑스에서 ‘육감의 엘비스’로 불렸던 전 남편 세르쥬 갱스부르의 사망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6월 25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순회 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버킨은 7월 9일 상하이에서 상하이 교향악단과 협연으로 ‘갱스부르 심포니’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RFI 보도에 의하면 버킨은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상하이 콘서트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버킨의 매니저는 버킨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엠네스티에서 인권보호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그녀의 ‘인권침해에 대한 공격’ 행위에 불만을 가진 중공이 비자 발급을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징(張菁), 미국 인권단체 중국여권(Women”s Rights in China) 설립자]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는 건 사실 중공이 이 사람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입국한 뒤에 그녀가 공공장소를 이용해 어느 콘서트에서 무슨 말을 할지, 또는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겁니다.”   [판자웨이(潘嘉偉), 홍콩 국제엠네스티 연구원] “이 사건은 그녀가 인권활동에 참여하거나 인권을 지지하거나 또는 중국의 일을 비난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도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 정부가 당사자에게 해명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공 당국은 버킨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에 관해 전혀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확인에 따르면 버킨 팀의 다른 멤버들은 비자 문제가 없었습니다.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 멤버인 버킨은 과거 40여 년 동안 세계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프랑스를 통과하는 기간에 항의활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RFI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 본부가 있는 국제인권연맹(FIDH)의 매스 미디어부 책임자 이사벨 여사는 버킨이 중공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거부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조금도 놀랍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언론의 질문에 답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징, 중국여권 설립자] “이런 일이 저에게는 그렇게 의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있는 사람이 중국 정부에 거슬리는 언행을 하거나 그들을 거북하게 한다고 느끼게 했을 때, 또는 아주 난처하게 만들고 크게 망신을 주었을 때, 그리고 심지어 겨우 몇마디 비평을 했을 뿐 전혀 중국의 체면을 깎지 않은 경우에도 나중에 이런 사람들은 모두 봉쇄를 당합니다.”   ... 7월 13, 2016
  •  【禁闻】709案一周年 王宇律师获人权奖    – 中 인권 활동가 대규모 체포작전 “709” 이후 1년 – 인권단체, 수감된 변호사에 국제 인권상 수여   [앵커] 지난해 7월 9일, 중국 경찰은 인권 변호사 등 중국 내 인권 활동가에 대해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실행했는데요. 이를 진보성향 매체에서는 ‘709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709 사건 발생 1주년을 맞아 국제 법조계, 인권단체, 미국 국무원, 주중 독일대사관 등에서 체포된 인사들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내면서 중국공산당(중공) 당국에 이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법률협회에서는 체포된 중국 변호사 왕위(王宇·여)를 ‘제1회 국제 인권상’ 수상자로 발표했습니다.   [기자] ... 7월 12, 2016
  • 又一副国级〝老虎〞开审日近 他在国外差点被捕   칭하이(青海), 간쑤(甘肃), 장시(江西)성 서기를 역임했고 한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었던 부국급(副国级 부총리 등과 동급) 관리 쑤룽(苏荣)이 입안심사를 받은 것은 이미 2015년 2월이었다. 최근 텅쉰차이징의 ‘프리즘’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쑤룽의 재판 장소는 지난(济南)시 중급인민법원으로 정해졌고 개정날짜는 7월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쑤룽은 18대 들어 두 번째로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재판받는 인물이 된다.   2013년 8월 22일~26일,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 전 충칭시위서기 보시라이가 출두하여 뇌물수수, 탐오, 직권남용 사건으로 재판받았다. 같은 해 9월 22일,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은 1심에서 보시라이를 무기징역에 처하고 정치 권리를 종신 박탈했다. 한 달 후 2심에서는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의 무기징역 선고를 유지했다.   쑤룽의 낙마는 2014년 6월, 입안심사는 2015년 2월이었다. 그리고 올해인 2016년 2월 쑤룽의 사위, 장자제(张家界)시 부시장 청단펑(程丹峰)이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었다. 쑤룽의 딸 쑤샤오쥐안(苏晓娟), 쑤룽의 아내 위리팡(于丽芳), 아들 쑤톄즈(苏铁志), 등 가족 14명이 모두 사건에 연루되었다.   올해 3월 ‘중국기위감찰보’에는 “가풍이 문란하면 집안에서 재난이 일어난다.”는 글을 올려 쑤룽 안건은 그의 가족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한 전형적인 가족 부패 안건이라고 말했다.   쑤룽은 낙마 후 그에게 뇌물을 준 부청급(副厅级) 이상의 관리가 40여명에 이른다고 자백했다. 쑤룽의 집은 곧 ‘권전(权钱)거래소’였고 그 본인은 ‘소장’, 아내는 ‘대금수납계’였다.   쑤룽은 장파의 2호 인물 쩡칭훙의 측근으로써 쩡칭훙이 직접 발탁하여 올라온 관리라고 한다. 앞서 한 언론에서는 쑤룽 사건의 배후에는 쩡칭훙 외에 장파, 전 상무위원 우관정(吴官正), 저우융캉과 현임 상무위원 장더장(张德江) 등 4명의 정국급(正国级) 고위관리가 연루되었고 이들 사이에는 모두 정치, 경제적 이권의 내막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밖에 그는 장쩌민 집단을 바짝 뒤쫓아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여 해외 ‘파룬궁박해 추적 국제조직’의 추적명단에 들어갔다.   2004년 11월 당시 간쑤성 성위서기였던 쑤룽은 우방궈(吴邦国)를 따라 외국을 방문하였을 때 해외 파룬궁 수련생에 의해 잠비아 고등법원에 고소되었다. 쑤룽은 법정의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법원은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현지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았다. 잠비아 경찰의 지명수배 기간에 쑤룽은 중국영사관의 협조로 몰래 귀국했다.   책임편집 자오윈(赵云)   http://www.ntdtv.com/xtr/gb/2016/07/08/a1275162.html   7월 1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