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闻] 옌황춘추 고위직 숙청의 내막

 【禁】炎黃春秋遭整肅 杜導正女兒透詳情

 

중국의 개혁 언론 옌황춘추(炎黃春秋)에 또 다시 액운이 닥쳤습니다. 사장 겸 총편집(편집장) 두다오정(杜導正), 부사장 후더화(胡德華)와 총편집 쉬칭취안(徐慶全)이 며칠 전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고 중공 문화부 산하 중국예술연구원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4일, 옌황춘추는 중국예술연구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7월 14일, 중국예술연구원은 6월 27일, 당정(黨政) 지도자 연석회의를 열어 구레이레이(賈磊磊)를 옌황춘추 사장으로, 하오칭쥔(郝慶軍)을 편집장(법적대표자)으로 임명했다고 인사발령 통보서에서 밝혔습니다. (언론잡지사의 경우 사장이 없으면 총편집이 편집과 경영을 총괄하는 것이 중국의 관례임. 사장이 명목상의 사장인 경우도 마찬가지임. – 역자 주)

 

전 옌황춘추 비서실장이며 집행주편(執行主編)이었던 두밍밍(杜明明, 두다오정의 딸)은 부사장으로, 집행주편을 맡았던 펑리산(冯立三), 딩둥(丁東)과 총편집 쉬칭취안, 그리고 부총편집 왕옌쥔(王彥君)은 모두 부주편(副主編)으로 임명했습니다. 잡지의 사무위원회(社委會)와 집행주편 제도는 폐지했습니다.(주편은 프로젝트별 상근 편집장 격, 프로젝트별 임시 편집장은 집행주편 – 역자 주)

 

이에 대해 두다오정의 둘째 딸이며 광저우(廣州) 중산(中山)대학 불어과 교수인 두리(杜莉)는 옌황춘추가 중국예술연구원으로 강제 편입될 당시 쌍방 간에 문서 협약이 있었다며, 현재 그들은 일방적으로 협약을 파기했으니 이는 위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리, 광저우 중산대학 불어과 교수]

“당시 그들 산하로 편입될 때 합의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문서 합의의 핵심은 인사권, 재무권, 편집권이었습니다. (옌황춘추는) 이 세 가지 권리를 자주적으로 행사하며 그들은 의견만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검토할 뿐이고 교정의 최종 권한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두리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말했습니다.

 

[두리]

“이번에 그들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그제 오전, 입원중인 아버지께 광전총국(廣電總局,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 사람이 병문안하듯이 과일 종류를 들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좋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더니 마지막에는 본심을 드러내면서 문서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두리의 말에 의하면 문서는 7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고, 고령의 관리가 일단 퇴직하면 지도자 그룹에 들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문서는 옌황춘추와 두다오정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두리]

“당시 저희 아버지는 자영업자였고 회사는 완전히 자영기업이어서 정부쪽에는 아무런 직무도 없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국가와는 한 푼도 관련이 없어서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게 타당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특별조치를 얻어 와서 행동을 취했습니다.”

 

[두리]

“그 사람이 왔다 간 직후 예술연구원에서 또 한 사람이 와서 갑자기 문서 하나를 내밀었는데, 바로 임명장이었습니다. 그 후 여러 명이 오전에 잡지사에 와서 직접 명령서를 낭독하고는 직접 내부 네트워크를 통제하고 재무를 장악했습니다. 그 편집장들은 저나 아버지와 의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두리는 그들은 그날 오후에 다시 병원에 와서 아버지 앞에서 문서를 읽었다며, 당시 일본에 있던 부사장 후더화에게는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두리]

“그들은 무마용으로 몇 명을 관리직에 임명했습니다. 기존의 (사무위원회) 조직이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동생을 부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매우 엉뚱한데, 이는 ‘두다오정의 사람도 중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두리는 옌황춘추 잡지사가 자신의 아버지와 몇몇 퇴직 관리의 고생으로 유지됐고, 25년 동안 국가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압력을 받아왔다고 말했습니다.

 

[황진추(黃金秋), 중국 독립 조사 기자]

“이 사건은 공산당 내부, 특히 문예선전 계통에 있는 극좌세력이 개혁 언론의 발전을 끊임없이 방해한다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옌황춘추는 개혁개방의 산물로, 수많은 국가 지도자와 수많은 중공 원로의 지지를 받았고, 샤오커(蕭克) 장군부터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까지 모두 이 잡지를 인정했습니다.”

 

옌황춘추는 시중쉰으로부터 ‘옌황춘추, 잘 하고 있다’는 든든한 치사를 받았지만, 중공의 역사적 착오를 반성하는 문장을 다수 발표해 왔기에 오랫동안 압력에 시달렸습니다.

 

[황진추]

“중앙선전부든, 아니면 기타 이념 담당자든, 옌황춘추같은 잡지사를 그렇게 대하다니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목을 조르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옌황춘추는 14일, 중국예술연구원의 일방적인 합의서 파기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잡지사는 또 긴급하게 사회 각계에 관심을 요청했습니다.

 

취재 친쉐(秦雪) / 편집 리윈(李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