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微视频】南海问题〝攘外必先安内〞
[자오페이]
남해 재판결과에 대해 ‘핫 이슈 토론’에서 일부 논의했습니다만 오늘은 미진한 부분을 말해보겠습니다. 우선 중국에서 전해지는 유언비어가 하나 있는데요, 1987년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남중국해 영유권을 논할 때 난사군도가 필리핀과 더 가깝다고 말하자 덩샤오핑(邓小平)은 필리핀이 중국과 더 가깝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헛소문입니다. 1987년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니까요. 중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양외필선안내(攘外必先安內)’ 정책, 즉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반드시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다는 정책을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중국 역대왕조의 눈부신 역사를 관찰해보면 모두 ‘양외필선안내’였습니다. 우리는 한조(汉朝)의 사례 하나를 말하겠습니다. 기원전 200년, 유방(刘邦)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적을 얕잡아보고 무모하게 돌진하다 바이덩(白登)산에서 흉노에게 포위되어 대패했습니다. 이것은 한조의 치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후 한조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바로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 후 외적을 물리쳤습니다. 우선 진평(陈平)과 주발(周勃)은 여(吕)씨의 반란을 섬멸합니다. 그 후 한문제(汉文帝)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력을 회복시켜 국력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런후 한경제(汉景帝)는 ‘7국의 난’을 소탕하여 평정하였습니다. 이로써 한조는 ‘내부 안정’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했고 비로소 한무제가 북흉노를 공격하여 물리치는데 성공했습니다.
14년의 항일전쟁에서 장제스(蒋介石) 선생도 이렇게 했습니다. 1931~1937년 국민정부는 장제스 선생의 영도 하에 아래의 몇 가지 큰일을 하였습니다.
1. 교육혁신입니다, 장제스 선생은 신생활운동을 시작하여 ‘예(礼), 의(义), 염(廉), 치(耻)의 미덕을 생활 속에서 일관되게 지키게 하는 동시에 국민생활에 군사 문화를 도입했습니다. 중국인이 우측통행하는 규칙은 바로 장선생이 정한 것입니다.
2. 국력을 발전시켜 전쟁수요에 대처했습니다, ‘국방설계위원회’의 <전쟁시 연료와 석유의 통제계획>, <식량저축과 통제계획>은 항일 전쟁에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3. 통일 화폐와 경제발전입니다.
4. 공업건설, 실업발전, 특히 도로, 철로와 통신설비의 건설은 전쟁에 대해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5. 후방 활동 근거지를 확립하여 항일전쟁의 지구력을 강화했습니다. 1935년 장제스 선생은 스촨(四川), 구이저우(贵州), 광시(广西)를 시찰하고 스촨을 민족의 부흥기지로 확립했습니다.
6, 군대를 정비하여 독일식 신군을 설립했습니다.
7. 공군을 설립하고 해군에 장비를 갖추었고,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8. 중공 반역집단을 소멸했습니다.
만약 플레이보이 장쉐량(张学良)이 교란하지 않았다면 장제스 선생은 2년 후에는 독일식 기계화 사단의 탱크와 대포 장비를 완전히 갖추었을 것이고 ‘상하이 전투’ 결과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장제스선생은 중국을 영도하여 동맹국과 참여하여 2차 대전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포츠담 선언’, ‘카이로 선언’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점령한 영토를 반드시 전부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남중국해의 섬 20여개를 베트남에 팔았기 때문에 중국은 남중국해의 11단 주권을 9단 주권으로 축소했습니다.
중화민족이 부흥하려면 반드시 재차 내부를 안정시킨 다음 외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위에서 우리는 내부안정을 언급했는데 반드시 소멸해야 할 세력은 바로 공산당입니다. 바로 장쉐량의 모반으로 장제스 선생의 내부안정이 순조롭지 못해 일본 패전 후 내전,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등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중공은 중국 땅을 점령한 후 남중국해 2단을 베트남에 팔아먹고 백두산의 일부분을 북한에 팔아먹었습니다. 이것은 왜일까요? 공산당은 영토를 중국인의 것으로 보지 않고 공산당의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당의 이념은 공산주의를 한 집안으로 볼 뿐 국가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내부 안정을 위해 소멸해야 할 하나의 반란세력은 장쩌민 일당입니다. 장쩌민 자신은 어두운 매국 행위를 직접 저질렀습니다.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 탐오ㆍ내란 집단의 배후 조종자는 바로 장쩌민입니다. 이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중국의 내란은 멈추지 않고 힘과 능력이 쌓일 수 없습니다. 이 일당은 또 민족의 정서를 잘 자극해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 자국민을 때려 부시도록 선동합니다. 배후의 목적은 바로 혼란을 조성하여 자신의 숙청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항일전쟁시기 중공이 조장한 시안사변(西安事变)과 맥을 같이합니다. 시간의 제한으로 오늘 우리는 여기까지 분석하겠습니다.
* 시안(西安)사변. 서안사건. [1936년 12월 12일, 시안(西安)에서 장쉐량(张学良)과 양후청(杨虎城)의 서북군(西北軍)이 공산군 토벌을 독려하러 온 장제스(蒋介石)를 감금하여 국민당(國民黨)과 공산당(共産黨)이 연합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할 것을 요구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