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폭력 피해 어린이가 법정에서 피고인 쪽 변호인의 반대신문에 응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가 19살 미만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항을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소송 중인 6살 한 어린이는 지난 3일 검찰로부터 법정 진술을 요청받았다.
3살 때 입은 성추행 피해에 대해 영상녹화진술까지 이미 마쳤으나, 헌재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아동은 법정에 서서 변호사와 판사의 질문에 답을 하고 가해자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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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아동 변호를 맡은 오선희 변호사는 MBC와 인터뷰하며 “아동이 어리면 어릴수록 이런 낯선 환경에서 낯선 어른들한테 ‘너 제대로 말해, 정확하게 말해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말할 수 없을 개연성이 더 높아진다”라며 “결과적으로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될 거다”라고 말했다.
특히 아동 성폭력 사건은 가족이나 선생님 등 가까운 어른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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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권력관계도 굉장히 크고 그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성을 굉장히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압박감,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서 출발한 질문으로 인한 2차 피해도 우려된다.
“먼저 유혹한 거 아니에요?”
“성관계 경험 있으시죠?”
“평소 주변에 남자가 많다던데….”
이는 10대 성폭력피해자가 법정에 불려 나가 받는 실제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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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가명) 씨는 아버지가 재혼해서 생긴 배다른 오빠에게 7살 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집을 나온 그는 18살에 오빠를 고소했고 전문상담기관에서 10년 넘는 고통을 진술했다.
진술 자체도 큰 스트레스였지만 녹화한 진술이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면 가해자를 마주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버텼다.
그런데 가해자가 끝내 성폭행을 부인하면서 “녹화된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수현 씨는 자발적으로 증인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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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났지만 수현 씨는 당시 변호사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질문의 강도들이 너무너무 제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당시에 어떤 속옷을 입고 있었고, 몇 번째 손가락이었는지 이런 걸 다 물어봐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기억해요? 그냥 아프고 싫었다는 것만 기억하지, 누가 그걸 보고 있냐는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판사는 “어떻게 붙잡혀 있었길래 못 빠져나왔는지 자세히 설명하라”고 물었다고.
수현 씨는 그런 배려 없는 물음에 눈물을 흘렸고 법정에 서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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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씨는 자발적으로 법정에 섰지만 앞으로 가해자가 녹화된 진술을 부인하면 어린아이들도 예외 없이 법정에 불려 나와야 한다.
피고인에게도 물어볼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게 이유다.
한 번만 녹화화면 다시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릴 필요 없다고, 피해자들을 설득해 온 상담전문기관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성폭력 피해 아동과 청소년들, 양육자들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어도 소송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우려해 신고를 망설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