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나오기 전날 밤이었다. 그날은 수백번, 수천번 다짐을 한 밤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꼭 말해야지.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위한 다짐이었다. 그렇게 가슴 속으로 다짐을 새기며 잠이 들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의연해진다.
새벽녘 초소에서도, 비무장지대에서 적을 마주하면서도,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에도.
매일 지각하고, 실수하고, 참을성 없는 나지만 당신을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이겨내고 있는 나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당신 앞에만 서면, 진심을 꺼내지 못하고 딴소리만 늘어놓는다.
당신의 시간은 더 거칠고 험난했을 텐데. 나는 작은 일로 항상 툴툴거리면서 항상 다른 사람만 좇았어.
사랑한다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항상 전하지 못했다.
군대에 가서 좀 더 남자다워져서 돌아오라고 했던 당신. 나도 군생활을 하면 더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어린아이가 됐다.
짝사랑 고백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당신 앞에서만 서면 진심을 꺼내지 못할까. 훈련소 조교들이 시킬 때는 그렇게 잘했으면서.
그렇게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휴가 복귀 날이 됐다.
복귀를 위해 전투복을 꺼내 입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고이 접은 5만원짜리 지폐가 나왔다.
틀림없이 당신이 넣었겠지.
하지만 그런 당신에게 나는 사랑한다는 고백도 하지 못하고 뒷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제 두번 다신 피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당신 앞에서 꼭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 누구보다 사랑해요. 당신의 그 힘들었던 시간, 내가 꼭 그 이상으로 보답할게요”
위 글은 지난해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공개됐던 사연을 재구성한 글이다.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자 군에 복무 중인 작성자 A씨는 온라인을 통해 아버지에게 전하는 진심이 담긴 편지를 적었다.
설명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는, 아내 없이 홀로 아들을 키웠다.
그런 아들이 조금이라도 모날까 봐, 사랑이 부족할까 봐 항상 육아 관련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아들을 돌봤던 분이라고 고백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A씨와 술을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이런 내 모습이) 참 우습지 않냐”고. A씨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A씨의 진심은 달랐다.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릴까 봐 억지로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했던 군인 아들의 아버지를 향한 고백.
이 감동적인 사연은 어버이날을 맞아 온라인에서 재조명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