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아빠가 되고 지금까지…”
오직 딸만 생각하면서 홀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아빠가 있었다.
그는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어떻게든 딸을 잘 키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렸다.
그가 아빠가 됐을 때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쳤을 시기였다. 고작 19살의 나이에 아이가 생겼다.
한때 잠시나마 나쁜 생각을 갖고 아이를 지울까 고민도 했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딸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돈 한 푼 없던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장과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밤낮없이 일했다.
기저귀와 분유를 살 돈이 없어 천 기저귀를 손빨래해가며 딸을 키웠다.
아이의 부모는 이혼까지 했다. 아이가 6살 무렵이었다. 결국 아빠는 딸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 홀로 키우기로 다짐했다.
간장 한 병에 840원이었다. 그걸로 아이와 둘이 끼니를 때웠다. 너무 힘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만, 자기만 바라보는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수만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중, 아빠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딸을 홀로 두고 가야 했던 아빠는 불안한 마음에 밥솥에 밥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주변 분식집 사장님께 딸아이를 맡겼다. 딸이 분식집에서 먹은 음식을 외상으로 하면 나중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부탁했다.
그렇게 지방 출장을 다녀온 아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활짝 웃으며 아빠를 맞이해준 딸은, 아빠 드시라고 밥솥에 밥을 해놨다며 자랑했다. 당시 딸은 8살이었다.
밥을 해놓고 2일이나 지났으니 당연히 밥은 쉬었다.
하지만 딸이 실망할까 봐 아빠는 맛있게 먹는 척 몇 숟갈을 입에 넣었다. 그러다 눈물이 터져 딸을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었다.
그런 딸이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했다. 딸은 첫 직장, 첫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아빠에게 건넸다.
월급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 슈퍼맨, 사랑해”
아빠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못난 아빠 만나서 고생만 했는데, 이렇게 잘 커줘서 너무 고맙다.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들 힘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