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수제 구두 만드는 법 독학하다가 왕실한테 직접 만든 구두 팔게 된 할아버지

By 윤승화

혼자 신발 만들기를 독학하던 할아버지가 세계 최고의 신발 장인에 등극해 화제다.

베트남 사이공에 사는 89살 찐 응옥(Trinh Ngoc) 할아버지는 전 세계 왕실과 정치인들이 찾는 신발 장인으로 유명하다.

일반 공장에서 신발 2~300켤레가 대량 생산되는 동안, 응옥 할아버지는 간신히 한 켤레를 만든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손으로 제작하며, 정교하고 완벽한 품질을 자랑한다. 신발 모양 또한 아름답다는 극찬을 받는다.

에포크타임스

74년 전, 응옥 할아버지가 15살 소년이던 1947년. 응옥 할아버지는 동생이 일하던 가방 공장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가방 공장 근처에는 신발 제작소가 있었다. 다양한 신발을 본 소년 시절의 응옥 할아버지는 흥미를 느꼈다.

신발 제작소에서 일하는 일꾼 아저씨들의 손짓을 어깨너머 보며 신발 만들기 공부를 시작한 응옥 할아버지.

하지만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신발은 서양 시장에서는 질 낮은 제품으로 여겨져 잘 팔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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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응옥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서래마을처럼 현지에서 프랑스인이 많이 사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프랑스 마을에는 유럽인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발 가게가 여럿 있었다. 응옥 할아버지는 유럽인 손님들의 신발을 수리하는 일을 했다.

프랑스산, 이탈리아산 신발을 사서 신는 유럽인 손님들은 응옥 할아버지에게 신발 수리를 맡기며 “품질만 좋다면 당신이 만드는 신발도 살 것”이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아직 당신의 기술이 별로 뛰어나지 않으니까 품질이 낮아서 믿고 살 수가 없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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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옥 할아버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인 손님들의 그런 발언은 내게 동기부여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뒤로 응옥 할아버지는 유럽인 손님들의 명품 수입 신발을 수리하며 신발들을 꼼꼼히 살피고 품질을 조사했다.

그리고 수리 업무가 끝난 매일 밤 직접 신발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할아버지의 신발 제작 실력은 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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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한 유럽인 손님이 신발을 수리하러 왔다. 응옥 할아버지는 손님의 신발 수리를 맡는 대신 자신이 직접 만든 신발들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그렇게 질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 뭐, 한 켤레 사보죠”

그렇게 자신이 만든 수제 신발을 처음 판매한 응옥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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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점점 더 많은 주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응옥 할아버지의 신발은 불티난 듯 팔리기 시작하며 전국에서 유명해졌다.

가장 먼저 패션에 민감한 나라, 프랑스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업가, 교수, 의사들이 신발 주문을 해왔고, 프랑스 대사관도 수제 구두를 의뢰하러 응옥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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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는 베트남 연예인들과 정치인들, 또 이웃 나라 캄보디아 총리와 그 가족들이 응옥 할아버지에게 신발 제작을 전담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는 캄보디아 왕실이 응옥 할아버지를 찾아왔다.

캄보디아 왕은 자기에게 구두 한 켤레를 만들어달라며 응옥 할아버지를 궁전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오늘날 응옥 할아버지는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수제 신발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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