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모든 것이 혼탁해질 만큼, 치매가 어머니의 기억을 완전히 앗아간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는 딸인 A씨에게 많이 의지했다.
딸이 곁에서 수발을 들어주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당신의 남편이나 아들에게는 절대 벗은 몸을 보이고 싶어 하진 않았지만, A씨가 씻겨줄 때만큼은 아이처럼 맑은 표정이었다.
A씨는 그것이 참 고마웠다. 언제나 딸만 찾는 어머니가 사랑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면서 안쓰러웠을 터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그만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A씨는 알몸으로 화장실에 있는 어머니와 마주쳤다. 화장실은 상당히 어질러진 상태였다고 A씨는 말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으신 후 자꾸만 새것에 집착했다.
이날도 어머니는 샤워를 하려던 참에 창고에 있던 샤워용품 세트를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바디 워시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비슷해 보이는 제품 중 하나를 꺼내 온몸에 칠했다.
어머니가 꺼낸 용품은 바디 워시가 아닌 바디 로션이었다.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바디 로션에서 거품이 날 리가 있나. 어머니는 거품이 날 때까지 바디 로션 한 통을 모두 다 써버렸다.
그 상태에서 A씨와 마주친 것이다.
깜짝 놀란 A씨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더운 숨을 몰아쉬며 급하게 어머니를 씻겼다. 한동안 알몸으로 계셨던 탓에 입술까지 퍼렇게 변한 어머니였다.
이를 본 A씨는 순간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엄마 뭐 하는 거야! 로션이랑 바디 워시도 몰라?”
어머니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로션 통을 확 빼앗은 A씨는 흥분한 상태로 쓰레기통에 힘껏 그것을 던져버렸다.
어째서 내가 어머니의 수발을 다 들어야 하나, A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른 A씨는 거대한 감정의 물결을 느꼈다. 바로 후회라는 감정이었다. 어머니에게 소리 치고 짜증낸 것에 대한 후회였으리라.
“우리 엄마는 아파서 그런건데…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생각한 A씨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다가가 “엄마 화 내서 미안해”라고 진심을 고백했다.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말했다. “왜? 왜 미안해?”
A씨는 순수한 어머니의 눈동자를 보며 “내가 아까 엄마한테 화냈자나. 그래서 너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니야. 네가 밥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하잖아. 엄마가 귀찮게 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A씨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미칠 듯이 몰려왔다고 토로했다.
어린 시절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도 챙겨 주고, 아플 때는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시던 어머니였는데.
자신도 그것과 똑같이 어머니에게 해주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왜 그걸 못하느냐고.
우리 엄만데.
A씨는 “솔직히 엄마의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서, 너무 힘들어 엄마와 같이 뛰어내려 볼까 하며 극단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날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A씨는 밤새 눈물만 흘렸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A씨는 “엄마가 나까지 잊어버릴까 봐 너무 무섭다”라며 “왜 하필 우리 엄마 기억을 훔쳐 갔는지… 너무 밉다”라고 전했다.
이어 “내일부터는 다시 힘내서 엄마를 웃게 해드려야겠다”고 말하며 장문의 글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