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추장님’이 된 한국인 식물학자

By 김연진

최초로 아프리카 추장이 된 한국인. 배고픔에 허덕이는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구한 영웅.

식물학자인 한상기 박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지난 1970년대, 한상기 박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서울대학교 농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농학 석사, 미시간 주립 대학교 대학원 식물유전육종학 박사 이후 한상기 박사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활동하던 그에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식물육종연구소 측이 함께 일하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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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상기 박사는 서울대 교수직도 포기하고, 영국 연구소도 포기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향했다.

“197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는 밀 개량으로 식량난 해결에 이바지해 노벨상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농학으로 인류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주식은 ‘카사바’다. 고구마와 비슷한 덩이뿌리 식물이다. 카사바를 가공해 밀가루처럼 만들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카사바가 병에 걸려 말라죽으면서 기아 문제가 심각해졌다. 카사바를 주로 먹는 25개국, 8억 명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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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한상기 박사는 카사바의 품종 개량에 나섰다. 병충해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카사바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막막했다. 한상기 박사도 카사바에 대한 연구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이지리아 전역을 돌면서 카사바 종자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또 카사바의 원산지인 브라질에서 우수한 종자를 받아 바이러스에 강한 유전자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5년간 연구 끝에,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저항성을 가진 ‘슈퍼 카사바’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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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상기 박사는 슈퍼 카사바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직접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한상기 박사가 개발한 슈퍼 카사바는 점차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실제로 아프리카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공로를 인정받은 한상기 박사는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정식 추장으로 추대됐다. ‘농민의 왕’이라는 칭호도 받았다.

한상기 박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구와 교육, 훈련 등에 힘쓰며 식량난 해결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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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1세가 되던 해, 나이지리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상기 박사는 나이지리아를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다 왔다. 내가 할 일을 다 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