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7대 국왕 효종은 상당히 다정한 아버지였다. 효종의 가족들은 왕실 가족답지 않게 서민적이고 훈훈한 가족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효종의 셋째 딸인 숙명공주는 13살의 나이로 시집을 갔다.
숙명공주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해 시집갈 때도 기르던 고양이를 데리고 갔다.
이에 효종은 숙명공주에게 한글로 쓴 편지를 보냈다.
“너는 시집에 가 (정성을) 바친다고는 하거니와 어이 괴양이(고양이의 옛말)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
시집가서도 고양이만 보지 말라는 잔소리와 함께 감기 걸리거든 약 잘 챙겨 먹으라는 애정 어린 말까지 볼 수 있다.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를 모아둔 ‘숙명신한첩’에는 애정이 묻어나는 편지들이 또 있다.
“너는 어찌하여 이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어제 너의 언니는 물론, 숙휘까지 패물들을 많이 가졌는데 네 몫은 없으니, 너는 그사이만 하여도 매우 안 좋은 일이 많으니 내 마음이 아파서 적는다.
네 몫의 것은 아무런 악을 쓰더라도 부디 다 찾아라”
언니와 동생은 왕실에 와서 패물들을 가져가는데 숙명공주는 욕심이 없었는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자 좀 와서 가져가라는 효종의 편지다.
숙명공주가 왕실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못 가서 죄송하다는 편지를 보내자 효종은 또 이렇게 답장했다.
“죄지은 것이야 무슨 다른 죄를 지었겠느냐. 네가 이번에 아니 들어온 죄인가 싶다.
이 죄는 심철동(숙명공주의 남편)의 죄니 보채고 싸워라”
네 남편 때문에 네가 내게 못 온 것이니까 남편한테 잔소리 좀 하라는 말이었다.
숙명공주는 정갈한 글씨로 효종에게 문안 인사 편지를 보내고는 했다.
“문안 여쭙고, 밤사이 아바마마께서는 안녕하신지 알고자 바라오며,
뵙지 못한 채 날이 거듭 지나니 더욱 섭섭함이 무어라고 할 말 없어 하옵니다”
효종은 그 위에 답장을 썼다.
“편지 보고, 잘 있으니 기뻐한다. 어제 두 색촉(물들인 초)을 보내었는데 받아 보았느냐? 초꽂이등을 이 초의 수만큼 보낸다”
딸에게 자꾸만 주고 싶은 효종의 마음이었다.
1600년대에 한글로 쓰인 편지에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가족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