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다들 무시하던 독도 우리땅인 ‘결정적 증거’ 남기고 떠난 세종대왕

By 안 인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리꾼들 사이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를 만들었던 뜻밖의 인물이 조명되고 있다. 세종대왕이다.

때는 1432년(세종 14년), 집현전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전국의 지리 정보를 상세히 기록한 조선 왕조 최초의 지리정보지이자 훗날 ‘세종실록지리지’의 바탕이 되는 ‘신찬팔도지리지’를 편찬한다.

당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지리 정보를 정리하던 세종은 우리 국토 최동단에 위치한 어느 섬을 짚으며 문제를 제기했다.

“무릉(지금의 울릉도)은 왜 지명조차 표기하지 않았는가?”

학자들은 “무릉에는 사람도 안 사는데 굳이 조선의 영토로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실제 그 시절 울릉도는 무인도였다.

기사의 이해를 돕는 자료 사진 / KBS ‘대왕 세종’ 캡처
기사의 이해를 돕는 자료 사진 / KBS ‘대왕 세종’ 캡처
기사의 이해를 돕는 자료 사진 / KBS ‘대왕 세종’ 캡처

이에 대한 세종의 반응은? 이들로 하여금 직접 울릉도로 가서 실측하고 기록해 오도록 했다.

왕의 명을 받들어 울릉도에 당도한 학자들은 조사 도중 바다 저 멀리에 또 다른 섬이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산, 지금의 독도였다.

그렇게 세종은 울릉도는 물론 독도까지 지리지에 명기했다. 역대 한국사 왕조들 중 독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왕조 사료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으며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풍일(날씨) 청명하면 능히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오늘날까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정한 결정적이고 확실한 기록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이 발견(1667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국가 차원에서 독도를 영유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