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17일 24시를 기점으로 비상 계엄령이 확대 실시되고, 전국의 모든 대학은 휴교 되었다”
1980년 5월 19일.
“부모님에게 광주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부터 쓰는 말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엄마와 아빠가 직접 보고 이야기한 말이기 때문에 난 믿을 수 있다”
“가택수사로 방 안, 창고, 옷장, 마루 밑을 뒤지며 학생들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오빠와 나도 공포심에 사로잡혀 집에 꼭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
1980년 5월 20일.
“여기 옥상에서 본 중앙로 로터리…”
“중앙로에 나가 보고 금남로 한국은행 앞까지 둘러 보니, 온통 시내는 전쟁의 폐허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일주일 후, 계엄군의 상무충정작전 개시. 전남도청 건물 점령. 상황 종결.
1980년 5월 27일.
“새벽 3시… 계엄군은 광주 시민을 몰살시키겠다고 했다”
“지금 여러분들은 도청에 나와서 광주 학생들을 살려달라”
“…호소하듯 울부짖는 그 소리는, 정말 처절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새벽 6시 30분, 이제는 그 음성도 끊겼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보관 중인 기록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 일기’ 중 일부 내용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자료는 당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점으로 비상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5월 19일 오후 2시에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8일부터 상황이 종료된 28일까지의 현장 상황이 매우 상세히 담겨 있다.
일기에서 나타나듯이, 신군부세력은 계엄군을 앞세워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광주의 대학생들을 무참히 진압했다. 광주의 거리는 피로 물들었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일기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이런 상황에서도 직접 현장을 두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목격한 참혹한 광경. 주인공은 자신의 일기장에 역사를 써 내려갔다.
시민들이 전투화에 짓밟히는 모습을 목격한 일기의 주인공은,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일기를 썼으리라.
그 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있다.
묵직하고도 뜨거운, 생생하면서도 아련한. 광주 시민들의 피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