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페이지의 사건 기록을 보지 않고, 귀로 듣는 판사님이 있다.
지난 28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김동현 판사가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김동현 판사는 시각장애인이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아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 중 간단한 눈 수술을 받다 발생한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수술대에서 바로 눈이 안 보이게 된 상황. 갑자기 겪은 사고로 충격이 컸다.
김동현 판사는 “내 인생이 끝났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김동현 판사는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서 침대에 있다가 어머니께서 밥도 먹여주시고 씻겨주시고 그랬다”고 했다.
그 상태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휴학 후 부모님의 권유로 절에 들어가 한 달을 지냈다.
날마다 삼천배를 했다. 새벽에 시작해서 밤 10시 반까지, 10시간 이상 절을 하며 한 달 동안 총 구만배를 했다.
김동현 판사는 “오히려 몸이 힘드니 마음이 힘든 게 치유됐다”고 회상했다.
스님도 김동현 판사에게 “육신의 눈은 뜨지 못했지만 마음의 눈을 떴다”고 말했다.
김동현 판사는 “눈을 다시 뜨는 기적은 없었지만, 눈을 뜬 것과 다름없는 기적이 생겼다”며 “시각은 없어졌지만 다른 것을 통해서 세상을 느끼고 세상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후 김동현 판사는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그리고 학교로 복학했다.
돌아가서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다시 걷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일을 배워나가면서 “갑자기 할 수 없게 된 것들이 하나하나 다시 돌아오는 게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고 김동현 판사는 설명했다.
복학해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교재를 직접 만들었다. 책 한 권에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 비용이 들었다.
그 책을 가지고 공부를 대충할 수가 없었다.
김동현 판사는 “그전까지는 4점대 학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복학해서 첫 학기에 4.1점을 받아서 그 학기 최우등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동현 판사는 이후 로스쿨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판사가 됐다.
매일같이 김동현 판사는 사건 하나당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일이 다 듣는다.
하루 10시간씩 사건 기록을 듣고 검토한다. 지도 같은 증거들은 인쇄해 손으로 짚어가면서 파악한다.
김동현 판사는 TV에 출연한 이유에 관해 “다른 분들께도 긍정적인 시그널을 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