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주먹도끼’가 발견된 계기

By 윤승화

대한민국의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세계 역사학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유적 중 하나다.

우리나라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학계의 입장은 구석기의 주먹도끼는 유럽과 아프리카만의 문화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구석기 주먹도끼는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당연스레 보는 것.

과거 세계 역사학자들은 이 주먹도끼를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만 있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를 ‘모비우스 학설’이라 부른다.

그런데, 1978년 우리나라에서 30만년 전에 쓰였던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모비우스 학설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주먹도끼를 비롯한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어떻게 발견됐을까?

연합뉴스

발견된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미국으로 건너가 봐야 한다.

미국 한 대학교 고고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있었다. 이름은 그렉 보웬.

학비를 벌기 위해 궁리하던 그렉 학생은 군대에 입대했고, 입대 후 미군 해외 파견 업무를 나간다.

그렉 학생이 가게 된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그렉 상병은 한국에서 열심히 복무했고, 상미라는 이름의 한국인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두 사람은 한탄강변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실제 그렉 상병 / KBS

이 날따라 날씨가 무척 추웠다. 두 사람은 몸을 좀 녹일 겸 커피를 끓여 마시기로 했다.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게 모닥불을 피울 용으로 돌을 모은 그렉 상병과 상미 씨.

이때 상미 씨가 이상한 돌을 발견했다. 특이하게 생긴 돌을 주운 상미 씨는 그렉 상병에게 돌을 보여주었다.

“진짜 특이하게 생겼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주먹도끼처럼 생겼….. ??????!”

고고학을 전공했던 그렉 상병은 뭔가 심상치 않은 돌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고, 상미 씨와 함께 한탄강 주변을 다시 한번 샅샅이 살펴 몇 점의 주먹도끼를 더 발견했다.

그렉 상병은 곧바로 주먹도끼 발견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주운 주먹도끼를 동봉하여 세계적인 고고학 권위자인 보르도 교수에게 보냈다.

EBS 화면 캡처

“선생님, 제가 한국에서 주먹도끼처럼 보이는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보르도 교수가 살펴보니 이는 진짜 주먹도끼였다.

보르도 교수는 한국 고고학계에 연락을 취해 연천 전곡리 유적을 조사해야 한다고 전했고, 이후 10년간 서울대학교 주도로 연천 전곡리 유적을 발굴하게 됐다.

그 뒤로 모비우스 학설도 완전히 전복됐다.

사실 모비우스 학설은 단순히 주먹도끼가 유럽과 아프리카의 유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는 이론이 아니었다.

“주먹도끼를 사용한 서구는 아시아보다 인종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인종차별적인 이론이었다.

그렉 보웬과 이상미 씨 / 연합뉴스

그러나 전곡리 유적이 출토되면서 서양 학자들은 더 이상 인종차별적인 주장을 펼칠 수 없게 됐다.

바꿔 말해 전곡리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인종차별적인 학설이 주류가 됐으리란 소리로, 그만큼 전곡리 유적은 역사학적으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유적을 발견한 주인공, 그렉 상병과 상미 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렉 상병과 상미 씨는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 후 행복하게 살았다. 2000년대에는 여러 차례 한국을 찾기도 했다.

2009년 타계한 그렉 보웬은 생전 자신의 인생에서 두 가지 큰 행운이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가 한국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 두 번째가 한국에서 사랑하는 상미 씨를 만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