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그랬던 그는 익명의 게시판을 통해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그 어떤 고백보다 담담하게, 혹은 서글프게.
A씨가 용기를 낸 계기는 가장 친했던 군대 후임 때문이었다.
“XXX 일병님은 왜 샤워를 자꾸 혼자 하십니까?”
후임의 이 질문에 A씨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얼버무리며 상황을 모면하기에 바빴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후임에게, 혹여나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2456번_제보 ㅁㅁ아, 가끔 너가 물어보잖아. “ㅁㅁㅁ일병님은 샤워를 왜 자꾸 혼자 하십니까?” 하고. 지금까지 계속 얼버무리기만 하고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여기에서라도…
Posted by SNU Bamboo Grove on Monday, April 22, 2019
A씨는 약 8년 전,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나도 중학생이고, 주변 또래들도 중학생이고, 다들 사춘기잖아. 그런 친구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이어 “시작은 그냥 평범한 장난이었겠지. 가벼운 놀림이나, 툭 하고 어깨를 치는 장난 같은 거. 하지만 그 가벼운 놀림이 어느새 내 심장을 찌르는 송곳이 되었어”라고 고백했다.
A씨는 중학교 시절 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과 폭력을 당한 것이었다.
그 담담한 고백은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A씨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벼운 장난들은 내 온몸에 피멍이 생기게 하는 주먹질, 발길질이 돼 있었어. 항상 교실 뒤편에 처박혀 여러 가지 일을 당했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학교 2학년 때였어.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됐는데, 나는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덜덜 떨고 있었어. 그런 나에게 몇몇 친구들이 웃으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어”라고 전했다.
그렇게 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A씨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당해야만 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친구들은 A씨의 심장을 파고드는 송곳 같은 말을 내뱉었다. “(폭력도) 이젠 질린다”. 온몸이 벌거벗겨진 채 폭행을 당하며 고통을 견뎌야 하는, 수치심을 겪어야 하는 A씨에게는 그 말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날카롭고 서늘했다.
그 순간 A씨는 느꼈다. 너무 무서웠다. 내 안의 뭔가가 자꾸 무너져내리는 그 느낌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 현실이.
이후에도 숱한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렸던 A씨. 그 일로 몸에는 끔찍한 상처들이 남게 됐다고 고백했다.
A씨는 “시간을 계속 흘러 어느덧 내가 대학교에도 가고, 군대도 가게 됐어. 하지만 난 그때 비뚤어진 그대로 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팔에는 여전히 내 나이보다도 많은, 수십개의 검붉은 선이 그어져 있어. 누구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할 때마다 한쪽 머리가 욱신거려”라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젠 정말 괜찮다고 믿고 싶은데, 아직은 좀 어렵네. 샤워 같이 못해서 미안해”라고 전했다.
A씨의 사연은 지난 23일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을 통해 공개됐다.
해당 사연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A씨를 응원하고 나섰다. 한 누리꾼은 “악몽 같은 시간을 버티며, 끝까지 이 악물고 버텨준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A씨를 한 번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정말 고생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