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구금되었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본 딸은 아버지가 불법 장기 적출까지 당한 사실을 알고 국제 사회에 폭로했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여성 한위는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중국 내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다.
중국 내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노동 교양소 등에 갇혀 가혹한 고문을 당하거나 생체 장기 적출을 당해 죽음에 이르는 등 갖은 박해를 받고 있다.
한위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간 곳에서 절대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는 친척들과 함께 아버지 한쥔칭의 시신을 확인했다.
사진 촬영과 취재진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가운데 딸은 잔인하게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몸은 바짝 말라 있었고 얼굴은 멍투성이였어요”라며 “더 끔찍한 것은 벌어진 셔츠 사이로 목부터 가슴까지 절개 자국과 꿰맨 자국이 보였어요”라고 말했다.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지만 경찰들은 한위를 저지하며 쫓아냈다.
이어 고모와 삼촌들이 셔츠 단추를 겨우 열어 봤을 때 한쥔칭의 시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씨 목에서 복부까지 수술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배를 눌렀을 땐 있어야 할 장기 대신 얼음만 가득 들어있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중국 공산당이 파룬따파 수련자나 가정 교회인들을 포함한 양심수로부터 강제로 장기를 꺼내 돈을 받고 판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처음 체포될 때 한위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어느 날 공안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마구 뒤지고 아버지를 끌고 갔다.
그녀는 “경찰들에게 아무 죄 없는 사람이 끌려갔다고 사정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저를 때리려 했어요”라며 “새어머니도 체포돼 집에는 저와 남동생만 남았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위의 부모는 ‘진(眞)선(善)인(忍)’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과 몸을 닦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됐다.
당시 중국에는 수천만 명이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어 공원 곳곳에서 파룬따파의 5장 공법을 체조하듯 따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중공)은 일당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단체, 종교, 언론과 교육 기관을 통제했다. 또 중공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탄압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장쩌민은 1999년부터 파룬따파를 잔혹하게 탄압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위 가정도 탄압받은 수많은 가정 중 하나다.
경찰은 한위의 집을 샅샅이 뒤져 파룬따파 관련 서적과 자료를 모두 압수했고 그녀와 동생을 감시했다.
언젠가 도피 중이던 다른 수련자와 연락이 닿았을 때, 경찰들은 그녀 집에 들이닥쳐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수련자의 행방을 말하라고 협박까지 했다.
동네 이웃들은 자신들도 연루될까 두려워 한위와 남동생을 피했다.
한위는 생전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파룬따파 수련 전 아빠는 동네에서 소문난 불량배셨어요. 도박과 담배, 술에 빠져 지내셨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뒤 한 씨는 다른 사람이 됐다. 온화해진 그는 도박과 담배 술도 끊었다. 집안 분위기도 따뜻하게 변했다. 그녀는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다고 덧붙였다.
풀려났다 다시 감금된 한위 아버지는 감옥에서 전기 고문과 폭력을 당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하지만 2004년 5월 4일 그는 고문 끝에 사망했다.
당시 외지에 나가 있던 한위는 아버지의 재투옥 사실을 몰랐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로 아버지 사망 소식을 접한 그녀는 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녀도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엔 잘못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거든요”라고 목이 잠긴 채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새엄마는 출소했지만, 감옥에서 당한 끔찍한 일들 때문에 결국 수련을 포기했다.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어렸을 때부터 한위도 부모님과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만뒀다.
그러다 2013년 어느 날 한위는 아버지 꿈을 꿨다.
그녀는 “꿈속에서 아버지는 매우 건강해 보이셨어요. 저를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는 곳에 데려가셨어요”라고 말했다.
목적지가 궁금했던 그녀는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엘리베이터 한 대는 올라가고 나머지는 내려간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잃어버린 것을 찾으렴” 이렇게만 말씀하시고 사라지셨다.
그 후 홍콩을 방문한 한위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대륙에서 일어나는 박해 사실과 중공이 날조한 사실들을 알리는 모습을 봤다.
두려움 없이 진실을 알리는 수련자들의 모습에 감동한 그녀는 신념을 되찾기로 했다.
2015년 전 세계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미국 모임에 참석한 뒤 중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구속됐다. 파룬따파 수련자인 집주인과 룸메이트도 함께 잡혔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의자에 묶여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미국에 간 이유를 조사받아야 했다.
다행히 경찰은 한위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그녀를 풀어줬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망명을 결심했다. 현재 중국 회사는 직원들에게 사회보장번호를 제공해 감시하고 전화도 감시하기 때문이다.
왜 미국을 망명지로 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미국에는 자유가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마침내 2018년 10월 15일 33세의 한위는 뉴욕에 도착했다.
그녀는 “자유를 처음 느꼈다. 중국에선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못 읽고 전법륜(파룬따파 수련 지침서)을 밖으로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라며 “미국에선 공원이나 지하철 어디서든지 파룬따파 책을 읽고 연공을 할 수 있다”라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때론 미국 경찰들이 자신을 끌고 갈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다는 한위.
하지만 그녀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매일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공의 파룬따파 박해 사실을 알린다.
그녀는 언젠가 아버지와 수많은 양심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이 내려지길 바란다.
장쩌민은 파룬따파 박해를 명령하며 “파룬따파 수련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경제적으로 파산시키고 물리적으로 그들을 파괴하라”라고 말했다.한위는 파룬따파 전문 탄압기구 ‘610 사무실’의 박해 방식을 알렸다. ‘매질에 책임지지 않는다’ ‘매질 당하다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즉시 신체를 소각하라’ 등이다.
중국 공안에게 온갖 고초를 겪었던 그녀는 오히려 “저는 진실을 모르는 그 경찰들이 매우 불쌍해요”라며 “만약 그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았다면 우리를 핍박하지는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위는 마지막까지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저 또한 제 믿음을 지키고 아직도 자신의 신념 때문에 박해받는 중국인을 위해 진실을 알릴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수가 풀려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