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회초리로, 때로는 눈물로…어느 늙은 조선 선비의 양육일기 ‘양아록’

조선시대에 어느 할아버지가 손자를 돌보며 ‘육아일기’를 썼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남녀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했던 유교 사회, 그 안에서 직접 자신의 손자를 돌보며 양육과 관련된 기록을 남긴 학자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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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탯줄을 자신의 손으로 끊은 날부터 자신이 숨을 거둔 날까지, 이문건은 약 17년 동안 손자의 성장과 함께 겪은 일화를 꼼꼼히 기록했다.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웃음이 나는 기록물의 이름은 ‘양아록(養兒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육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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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의 제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관료 겸 학자 이문건은 을사사화(1545년)에 휘말려 유배형에 처했다. 자식 여섯은 모두 이른 나이에 죽었고, 아내는 고향으로 돌아간 상황. 이문건의 옆에 남은 사람은 오직 58세에 얻은 손자 한 명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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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처지였지만, 이내 손자 돌보기에 재미를 붙인 이문건은 본격적인 양육일기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자 이수봉이 16세가 될 때까지 쌓인 방대한 기록들. 그중 눈에 띄는 문장들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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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걸려 아파할 때 손자는 먹이고 똥 누이는 일을 일일이 할아버지가 해달라고 졸라댔다. 기쁜 마음에 꺼리지 않고 돌봐주니 즐거워하고 좋아했다.”

“아이가 학문을 익히지 않아 옆에 앉게 하고 꾸짖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일어서서 나가더니 아이들과 동문 밖에서 어울렸다.”

“늙은이가 아들 없이 손자를 의지하는데, 손자 아이가 술을 탐하여 뉘우칠 줄을 모른다. 번번이 심하게 토를 한다.”

이외에도 양아록에는 “(아이가) 더위를 먹었다” “이마를 다쳤다” “불고기를 먹고 탈이 났다”는 등 소소할 수도 있는 사건까지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애정이 은은하게 풍기는 듯하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한 편의 ‘시트콤’ 같기도 하다. 철부지 손자와 근엄한 할아버지가 함께 지내며 벌어진 일상들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가?

실제로 이수봉의 손자는 학문을 게을리 하고, 앞서 언급했듯 어린 나이에 술에 빠져 지내는 등 천방지축의 모습을 꽤나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뛰어난 선비였던 할아버지로서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상황. 이문건은 회초리도 들고, 꿀밤도 때리며 손자를 꾸짖었지만, 동시에 예쁜 손자를 타이른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등 ‘손자 바보’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손자의 나이가 16세에 접어든 1567년, 이문건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거기서 양아록의 기록은 멈췄다. 현재 양아록은 조선시대 양육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시의 풍속을 충실히 기록한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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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한 손자 이수봉(1551~1594)은 훗날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참전했다. 전쟁 당시 이수봉은 큰 공을 세웠으나, 이에 대한 보상을 극구 사양하며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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