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등교하는 9살 딸과 6살 아들 남매를 경운기로 데려다준 아빠가 있었다.
“아빠, 조금만 가까이 가서 내려주면 안 돼?”
“안돼. 아빠가 미안해”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는 아빠 서장철(53) 씨는 아이들의 부탁을 거절하고 학교 뒤편 먼 곳에서 내려주었다.
자신이 뇌성마비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수연이, 종범이를 친구들이 놀릴까 봐… 될 수 있으면 저를 안 보게 하려고요.
애들이 저보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그뿐이에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남의 집 소를 돌보는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가는 아빠는 두 아이를 홀로 키웠다.
혹여 자신의 장애 때문에 아이들이 놀림 받지는 않을까.
늘 먼발치에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곤 했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했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우산이 없으니 학교까지 와 달라”, “준비물 좀 정문까지 가져다줘라”고 말하는 아홉 살 딸 수연이.
이에 아빠는 매번 학교 근처 해장국집에 우산이나 준비물을 맡기고는 자리를 피했다.
“이따 애들한테 우산 좀 전해주세요”
어떻게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가지 않으려 하는 아빠를, 9살 수연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던 어느 날, 수연이가 준비물을 놓고 학교에 가는 일이 생겼다.
전화를 걸어온 수연이에게 아빠는 “해장국 아줌마한테 갖다주면 안 돼?”라고 물었다.
“싫어. 정문으로 갖다줘”
진짜 마냥 어린 건지, 아빠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딸의 속내를 모르는 아빠는 마냥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에 구석진 곳에 숨어 준비물을 들고 기다렸다.
“마음은 진짜 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때였다. 수연이가 찾아왔다.
“아빠 왜 여기에 있어?”
딸은 주저앉아 있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 이리 와봐.
얘는 민정이고, 얘는 혜미고, 얘는 유진이야”
친구들은 밝게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했다.
그동안 딸이 자꾸 아빠를 학교로 부른 이유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뇌성마비 아빠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학교에 한 번 찾아가 볼걸”
아빠가 했던 걱정과는 달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착하고, 일등이라 말하는 딸이었다.
“아빠가 미소 짓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1등은 아빠, 2등은 종범이, 3등은 나, 그다음은 소”
딸에게 아빠는 ‘뇌성마비 아빠’가 아닌, ‘최선을 다해서 사는 아빠’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지난 10월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동행’에서는 이들 부녀의 근황이 전해졌다.
4년이면 수연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졸업반, 사춘기를 맞이할 나이였다. 수연이는 어떻게 컸을까. 또 어려운 형편이었던 아빠는 어떻게 지낼까.
아빠는 4년 전 후원으로 소 한 마리를 키우게 됐다.
소 이름을 ‘고맙소’로 짓고, 열심히 돌봤다. 고맙소는 새끼를 낳았고 이제는 고맙소 말고도 귀엽소, 행복하소, 빛나소, 반갑소까지 키우고 있다.
트럭도 한 대 생겨 더이상 경운기로 힘들게 아이들을 데려다주지 않아도 됐다. 읍내 공업사에서 용접하는 일도 배워 작은 공업사를 하나 차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수연이는 전교학생회장이 됐다. 여전히 올곧게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친구들도 집에 초대하는 모습이었다.
마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맛난 고기를 구워 먹고, 아빠는 흐뭇하게 그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