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가 싸운 동기은 오직 하나,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10년 9월 2일 비슈누 프라사드 쉬레스타(Bishnu Prasad Shrestha)는 인도 육군에서 퇴역한 후 열차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열차 강도 사고가 발생했다.
그가 탄 열차에 무장 강도 40명이 올라타 승객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총칼로 무장한 강도들로부터 약탈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8세 소녀가 부모 앞에서 겁탈당하기 시작하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공포와 충격에 울음을 터뜨린 소녀 앞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넌 군인이야, 소녀를 구해야 해, 여동생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먼저 강도 두목을 덮쳐 제압해 인간 방패로 삼은 후 구르카 용병이 사용하는 쿠쿠리 검을 사용해 무장 강도 40명과 사투를 벌였다. 그는 20분간 3명의 강도를 해치웠고 8명을 부상시키자 나머지 강도들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다행히 강도들의 총은 가짜였다.
그는 왼손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소녀는 목에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모두 무사했다. 그는 도둑이 훔친 물건들과 휴대폰 200여 대, 노트북 40대, 상당량의 보석류와 현금 1만여 달러를 회수할 수 있었다.
소녀의 가족은 그 후 큰 보상을 제안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적과 싸우는 것은 군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며, 기차에서 강도와 싸운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구르카 용병에 대해
쉬레스타는 1974년 네팔 출생으로 제8구르카 보병대 소속이다. 구르카 족인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복무한 전력이 있는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중세 시대부터 알려진 구르카 족은 전설적인 네팔 전사들이다. 식민지 시대에 영국군은 구르카 족과 싸운 후 이들의 전투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아 용병으로 삼게 된다.
이들은 영국 동인도회사 시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심지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군과 함께 했다. 이들의 독특한 휘어진 나이프 쿠쿠리(Khukuri)는 전투에서 구르카족의 용맹성과 숙련도를 상징한다.
구르카의 전투력은 동맹국이나 적국으로부터 모두 인정을 받고 있다.
인도 육군 참모총장 샘 매넥 쇼(Sam Manekshaw)는 “한 남자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거짓말이거나 구르카다”고 말했다.
찰스 왕세자는 “세계 곳곳에 단 하나의 안전한 장소가 있다. 그곳은 구르카인들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사마 빈 라덴도 “나에게 구르카가 있었다면 미국인들을 산채로 잡아먹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언급했고, 아돌프 히틀러도 “내게 구르카가 있다면 세상의 어떤 군대도 나를 물리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구르카는 영국, 미국, 인도, 네팔, 말레이시아 군과 함께 하며 용병 역할이 끝나면 그들은 보통 네팔인으로 돌아와서 생계형 농민이 된다.
영국군은 최소 4년이상 함께 한 구르카족 용병에게는 평생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