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의사 유진 라조위스키(Eugene Lazowski)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스타로바 볼라에서 진료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라조위스키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당시 수많은 폴란드인은 나치에 연행돼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이 남성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남성은 친척 방문 차 2주간 휴가를 받았지만 휴가가 얼마 안 남았다면서 강제 노동수용소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가족이 연루되기 때문에 남자는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 가닥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이한 병에 걸리면 수용소를 피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라조위스키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라조위스키 박사는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 이 남성을 돕기 위해 가짜 백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 백신을 주사하면 실제로는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지만 장티푸스 양성 반응을 보인다.
이후 가짜 백신을 접종한 남성의 혈액 샘플을 독일 당국에 제출한 결과, 그는 장티푸스 판정을 받고 강제수용소 행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나치 독일 당국은 장티푸스를 매우 두려워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많은 장병들이 장티푸스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찾아온 폴란드인들에게도 가짜 백신을 놓아주었고 결국 곧 많은 가짜 ‘장티푸스 환자’가 나타나 이 지역은 바로 나치 당국에 의해 ‘전염 구역’으로 지정돼 격리 조치가 취해졌다.
이 작업은 라조위스키와 친구인 마툴래비츠 박사 둘이 비밀리에 진행했다. 가짜 백신을 접종한 시민들에게는 어떤 사실도 알리지 않았고 가짜 백신 제조에 신중을 기해 실제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하지만 ‘장티푸스 감염자’가 증가했지만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자 나치 당국은 의심을 품고 조사 팀을 파견해 현지 조사에 착수했다.
라조위스키와 마툴래비츠는 당황했지만 곧 기발한 대책을 생각해냈다. 조사 팀의 상급 의사들에게 고급 요리와 보드카를 접대했고 그 동안 가짜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에서 건강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사람을 뽑아 불결한 방에 가두고 조사팀의 말단 의사들만 데리고 검사에 나선 것.
말단 의사들은 심각해보이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감염될까 두려워 일부에게서만 채취한 혈액으로 검사했고 양성 반응이 나오자 서둘러 철수를 건의했다. 상급 의사들도 ‘위험 구역’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에 검사 결과를 즉시 인정하고 황급히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전염 구역’은 이윽고 유대인의 ‘천국’이 됐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 구역에 들어와 나치의 연행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3년 사이에 가짜 백신으로 폴란드인과 유태인 약 1만 명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라조위스키는 이후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으로 1958 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1976 년 일리노이주 주립 대학 소아과 교수가 됐다. 그는 자신의 친구 마툴래비츠가 뉴스레터에 관련 기사를 발표한 1977년까지 자신의 행적을 숨겨왔다.
폴란드 스타로바 볼라 주민들은 지난해 9월 라조위스키를 기리는 전시회를 연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