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기내과 의사 창업 벤처기업 개발, ‘의료계 혁신 기기’주목
혈압계처럼 가정마다 보급되면 ‘의료 모습 일대 변화’ 기대
흰 가운에 목에 건 청진기. 의사 하면 맨 먼저 떠 오르는 모습이지만 요즘은 병원에서도 청진기로 진찰하는 의사는 이전 처럼 많지 않다.
X선,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촬영(MRI) 등 보다 정확한 검진이 가능한 영상의학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청진기로 듣는 소리를 데이터로 영상화해 보여주는 ‘초(超)청진기’가 개발돼 특히 의사가 부족한 농촌 등 지방의 의료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일 NHK에 따르면 차세대 의료기기로 주목받고 있는 초청진기는 컴퓨터 마우스 형태다. 가운데 흰 부분을 가슴에 갖다대고 심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건 200여년간 거의 원형을 유지해온 일반 청진기와 같다.
가장 큰 특징은 심장에서 나는 소리를 선명하게 포착, 데이터로 처리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점이다. 이 초청진기가 앞으로 의료의 모습을 바꿔 놓을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 기기는 구마모토(熊本)현 미나마타(水俣)시에 있는 “의료계 혁신”을 표방하고 있는 벤처기업 ‘AMI(Acute Medical Innovation)’이 개발했다.
현역 순환기내과 의사인 오가와 심페이(小川晋平. 36) 사장이 개발을 주도했다. 4년전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자각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병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면 구할 수 있는 생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진기 자체가 질병을 찾아내는 기능을 갖게할 수 없을까 생각한 끝에 소리를 디지털화하는 초청진기에 착안했다. 심전도에 이용되는 장치를 일부 활용하는 방식이다.
심장이 박동할 때 나오는 미량의 전기를 감지하고 그 타이밍에 맞춰 심장소리를 들음으로써 소리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다. 심장에서 나는 소리의 크기, 음역의 높고 낮음을 영상화함으로써 판막의 이상으로 심부전 등을 일으키는 ‘심장판막증’ 등의 징후를 의사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구체적으로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정상적인 심장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다른 음이 거의 없다. 각각의 소리가 질서정연하게 독립적이다.
반면 일본 국내에 약 100만명으로 추정되는 대동맥판협착증 환자의 심장음에는 귀로 들으면 박동음 사이에 잡음이 섞여있다. 혈관이 좁아졌다는 증거로 영상에서도 소리의 형태가 찌그러져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를 소리와 영상 양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병이 초기 단계일 경우 심장의 미세한 잡음을 귀로 듣고 파악하는 건 노련한 의사에게도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초청진기를 이용하면 미세한 이상징후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의사의 판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가와 사장은 “병의 유무는 물론 중증정도까지 판단할 수 있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사의 귀를 능가하는 청진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초청진기는 의사가 부족한 지방의료에 크게 기여할 잠재력이 있다.
오가와 사장이 설립한 회사는 작년말부터 일반 가정과 양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초청진기를 시험적으로 써보도록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대사 관련 건강진단에 필요한 검사항목 검사에 수진자가 직접 써보게 하는 것이다.
실험에 참가한 현지 30대의 한 남성은 초청진기를 자택 PC에 연결하고 자기가 직접 청진기를 가슴에 갖다대는 방법으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떨어진 곳에 있는 의사에게 심장음을 보냈다. 의사는 비디오를 보면서 ‘조금 오른쪽으로’, ‘조금 아래쪽으로’ 등 청진기를 댈 부위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5분 정도에 검사가 끝났다.
검사를 받은 남성은 “의외로 간단해 놀랐다. 실제로 쓸 수 있게 되면 자택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가와 사장은 앞으로 초청진기의 소리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안정적으로 송신할 수 있도록 개선해 실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혈압계가 가정에 보급됐듯 초청진기를 가구마다 1대씩 갖추게 되면 고령자도 스스로 건강을 체크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