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의 호의호식 막는 것이 나의 사명” 피해자 민사소송 돕는 경찰관

By 정경환

1천 600억대 규모의 사이버 사기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한 수사관이 경찰 정신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를 잡고도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 어려워 그야말로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온라인 사이버 사기 범죄.

그러나 “범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호의호식하는데 피해자들은 가정파탄에, 빚에 시달리는 상황은 막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외치는 경찰이 있다.

바로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사이버테러 수사팀 윤희동(46) 경위다.

윤희동 경위 | 연합뉴스

1999년 순경으로 배치되 2003년부터 사이버 수사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한 윤 경위는 수많은 피해자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단순히 피의자 검거에만 그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터넷 사기에서부터 보이스피싱, 몸캠피싱까지 사기를 당한 이후 삶이 무너지거나 심지어 스스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까지 접한 그는 어떻게든 범죄조직을 잡고 피해자들의 삶을 되돌려 놓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6월 1600억 규모 해외 사이버 범죄 조직원 24명을 검거하고 이 씨의 국내외 재산 111억 원을 몰수보전 및 압수하는 성과를 내며 그간 쌓아온 내공을 입증했다.

연합뉴스

우연히 받은 스팸 문자를 추적해 2년여의 수사 끝에 태국과 베트남 등에 활동 본거지를 둔 이 씨 조직원 24명을 일망타진 한 것이다.

이들은 피해자만 약 6천 500명에 달하는 선물·옵션 투자 사이트 및 외국 복권 구매 대행 사기 사이트 등을 10년 이상 운영했다.

수사 과정에서 윤 경위는 이 씨 가족의 국내 집을 찾아가 통장 13개를 압수하고는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은행에 전화를 걸어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했다.

이모 씨가 태국 현지에서 거주했던 호화 콘도 | 연합뉴스

주범이 아닌 주범의 가족 계좌까지 이런 조치를 취하기란 은행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역으로 소송을 걸 경우 윤 경위 본인이 지급 정지로 인한 피해액을 물어내야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경위는 끈질기게 은행을 설득했고, 거짓말처럼 지급 정지 효력이 발휘된 이후 30분 뒤에 이 씨 가족들이 은행을 찾아 수십억 원을 인출하려고 했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해자들의 피 같은 돈을 지킬 수 있던 순간이었다.

연합뉴스

이 사건으로 실제 피해자 중 한 명인 광주 지역 A(59) 씨도 최근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 금액 1천만 원을 돌려받았다.

A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변호사도 없이 혼자 싸웠는데 수사관님의 빠른 조치 덕에 통장이 다행히 그대로 묶여 있어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수사관님이 자기 일처럼 사건을 처리해준 게 너무 고마워서 사무실로 통닭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한사코 사양하더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