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오청성(25)씨가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인터뷰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상처는 아물었나
“2월까지 입원했지만 현재는 통원하는 한편 일을 하고 있다. 팔뚝의 신경을 제거해서 꼬집어도 못 느낀다.”
(셔츠 오른쪽 소매를 올리면 위쪽 팔뚝에 상흔이 있다. 탄환은 팔뚝 뒤쪽으로 들어와 앞쪽으로 관통했다. 크게 찢어져서 봉합한 사출흔(射出痕)에 통증이 있다.)
공격한 것은 누구인가
“4명 전원이 (군대) 친구다. 쏘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반대로 내가 그 입장이라도 쐈을 것이다.”
당시엔 위중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수술 후 간신히 눈을 뜨니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 기억이 난다.”
(오청성은 군 소장 아버지를 가진 4인 가족으로 출신 계층이 높고 부유한 편이었다. 배속처도 군경찰 등 특권을 가진 부서를 돌았음)
현재 북한의 빈곤 실태는
“농민이 쌀과 채소를 만들어 권력자가 입에 올린다. 제재로 (외국제품의) 유통이 좋지 않다. 국산품은 일부 사람이 빼앗는다. 이미 국가배급은 작동하지 않는다. 권력자 말고는 가난하지만 특권적인 평양 시민에게도 지난해 국가기념일 특별배급이 없었다.”
배급이 없으면 어떻게 사는가
“예를 들어 근무처 회사가 벌이가 되면 종업원은 돼지고기 1kg, 담배 1 보루 등을 지급받는다. 북한 사람들은 일본제품을 아주 좋아한다. 닛산 패트롤이라는 차는 장교 전용이다. 정치적으로는 일본을 매도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존경한다.”
(오씨는 “돈이나 권력인가 중 어느 쪽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객사한다”라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표현했다. 김정은 정권을 보는 북한 주민들의 시신이 냉랭한 것 같다.)
탈북 의사가 있었나
“한국 영화나 음악을 알고서 한번 가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망명 전까지는…. 나는 상류층이었다. 군경찰에 근무할 당시만 해도 나도 위반 사실을 발견하면 돈을 주면 봐주고, 아니면 유치장행이라고 협박해 용돈을 벌었다.”
수술 시 기생충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북에서는 비료에 인분을 쓴다. 구제약도 먹지만 아마 주민 대부분이 기생충을 갖고 있다. 군에서는 식기를 닦지 않고 다시 사용한다. 다만 기생충은 정말로 영양실조라면 생기지 않는다. 나에 관해서는 영양실조가 아니라 오히려 좋아서 나왔다.”
김정은 조선 노동당위원장 통치를 국민은 어떻게 보고 있나
“친구들이 어떻게 느꼈는지에 관심은 없었다. 나는 무관심했다. 같은 세대에서는 아마 80% 정도가 무관심하고 충성심도 없다. 인민을 못 먹여도 세습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면 관심도, 충성심도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김정은의 이복형 정남 씨와 고모부 장성택이 살해됐는데
“원래 김정남을 몰랐다. 장성택 처형은 매우 이상했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 와서 나빠서 죽은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현 정권 들어 북한군의 변화는
“규모가 확대되고 좀 더 전투적인 태세가 됐다.”
한국군을 어떻게 생각하나
“군대 같은 군대가 아니다. 한국에도 나와 비슷한 고통스러운 훈련을 한 사람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가족들의 안부는(탈북자 가족은 엄벌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 신상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히려 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외롭지만 남한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다시 출발했다.”
한국 언론에서 살인이 원인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탈북한 이유는
“살인하지 않았다. 탈북은 친구들과 갈등이 높아졌기 때문이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