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사령부는 2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연평도 포격전 8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추모식은 고 서정우 하사·고 문광욱 일병을 기억하는 의미로 행사 참석자들이 고인의 묘역을 참배하며 국민의례와 추모영상 상영, 헌화 및 분향, 추모사 낭독 등이 이어졌다.
당시 양측의 포격이 끝난 후 확인된 한국군 피해는 해병대원 2명 전사, 6명 중상, 10명 경상이며, 민간인 피해는 2명 사망, 58명 경상이었다. 해병대 장병 중에서는 중상자 4명을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두 해병이 전사했다.
서정우 해병은 휴가를 가기 위해 부두에서 배 편을 기다리던 중 북의 포 공격이 시작되자 인근 방공호로 몸을 피하려다 방공호를 300여 m가량 남겨 놓고 인근에서 터진 포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문광욱 일병은 대피호에 있던 중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주변에 터진 포탄 파편에 가슴을 관통당해 숨졌다.
다음은 포격전 수기집 ‘우리는 승리했다’에 기록된 연평부대 해병들의 일부 활약상이다.
“지통실이 소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 ‘진정하고 주민 대피 지시부터 내려!’라는 부대장의 호통이 군인으로서 연평도에 있는 이유를 일깨웠다.” (중위 김대원)
“어린이들은 다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사 담당과 유치원으로 차를 타고 갔다. 유치원 앞은 혼란 그 자체였다. 화염 속에서 어린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리고 있는 유치원 교사가 있었다. 유치원 안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령 남정일)
“‘다들 무사할까?’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소리와 함께 사방이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는 화염이 어깨 선상까지 포 내부로 올라온 상태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쟁이구나!’ 난 해병대인데… 해병대인데…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상병 임준영)
“포탄이 낙하 되는 상황에서 즉각 사격 준비를 지시했다. 우리 중대원들은 차분하면서도 대담하게 사격을 준비했고 5포, 6포가 사격 준비 완료 보고를 했다. 6포는 얼마나 화가 났던지 3번이나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포7중대장 김정수)
“불길이 깊은 산으로 번져가는 것을 어느 정도 막고 있을 즈음, 산속에서 갑자기 ‘그래! 북한 놈들아! 한판 붙자’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그곳을 보니 본부중대 박용철 중사가 혼자서 소화기를 들고 산 정상에서부터 불을 끄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언제 정상으로 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상사 송광호)
“내 눈으로 본 2포의 모습은 분명히 장비 파괴로 임무 불가 상태였다. 그런데 2포는 우렁찬 목소리로 ‘사격 준비 끝!’을 외쳤다. 고마움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래서 부대장에게 3문이 사격 준비가 끝났다고 정정 보고를 하였고, 부대장은 ‘사격해!’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포7중대장 김정수)
“어떤 해병은 흉부에 생긴 상처에서 장기가 보였다. 그래서 얼른 보고를 하고 처치를 하였다. 환자를 처치하는 동안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정말 무서웠다.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북한이 포를 쏜다고 모두 대피하라는 방송이 들려 왔지만 모두들 방송을 무시한 채 환자를 처치하였다.” (이병 강병욱)
“끊어져 가는 숨을 붙잡아 보고 싶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으나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병사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주변에 다른 부상자들의 신음소리, 비명소리와 다급한 외침들이 가득하여 곧바로 다른 대원들의 상태를 보러 갔다….도착한 병사를 살펴보니 전신 곳곳에 파편을 맞은 상태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대위 김혜강)
“우리의 전우를 죽이고 다치게 한 적에게 복수하기 전까지 나의 시간은 11월 23일 화요일에 계속 정지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내 시간은 다시 흐르지 않는다. 전우여! 편히 잠드소서.” (대위 송종석)
(이미지=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