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결심하고 온 환자…진료 안 봐도 됐을 터” 임세원 교수 추모글 ‘뭉클’

“설마 임세원 교수님은 아니시겠죠? 예전에 제가 한참 힘들었을 때 저를 보듬어 주시던 주치의 선생님이에요. 사실이라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에게 살해됐다는 급보가 쏟아지자 네이버의 카페에 한 네티즌이 글을 올렸다.

우려는 곧 사실로 확인됐다. 임세원 교수(47)가 진료를 모두 마친 뒤 찾아온 한 30대 조울증 환자를 진료하다 비명에 갔다.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복도에서 환자 박씨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렸다.

2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임 교수의 유가족은 “자기만 살려고 했다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 간호사 안전을 챙기는 과정에서 제대로 피하지 못한 것 같다”며  “그 와중에 계속 피하라고 알리고, 피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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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서 확산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

임 교수의 마지막 환자였던 박씨는 진료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임 교수는 곧바로 만약의 상황에 대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피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밖에 있는 간호사 등이 걱정돼 대피 공간을 나와 “빨리 피하라”고 소리쳤다.

임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간호사들에게 피하라고 알리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이후 임 교수는 응급실로 급히 이송 됐지만 약 2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자신의 모친이 임 교수에게 5년간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항상 친절하던 분이었다. 어머니도 착한 사람은 일찍 하늘에 가는 것 같다고 하신다”며 “늘 90도로 인사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다른 한 네티즌은 “기사를 보고 설마 임세원 교수님은 아닐까 조마조마 했다. 한창 힘들때 용기를 주셨던 분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그를 추모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저도 어제 알고 계속 울었다. 힘들 때 큰 도움이 되어 주신 분이다. 다른 의사들과는 다르셨다”며 “그간 힘들 때마다 ‘교수님 보러 가면 되지’ 하며 힘을 얻었는데 앞으로 힘이 들 때 어디로 가야 할지”라고 애도했다.

지인으로 보이는 네티즌의 글도 올라와 주목을 받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이던 겸손한 사람이었다. 죽음의 순간이 더 마음 아프다” 며 “예약하지도 않고 몇 달 만에 온 마지막 환자. 진료 시간도 지났기에 안 봐도 그만이련만 그는 기꺼이 진료를 했다. 그 환자는 이미 살인을 결심하고 온 것일텐데…”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임 교수를 애도하는 성명을 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고인은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다”라며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우리 사회의 리더”라고 표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전문지 ‘정신의학신문’는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일 줄은 몰랐습니다” 라며 “새해를 함께 맞이하지 못한 우리의 동료, 아둔한 손을 탓하며 흉부외과의 꿈을 접었고 정신과 전공의 때 자살징조를 알아채지 못해 자신의 머리가 아둔하다며 자책했던 동료,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을 구해오셨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당신의 의지는 우리가 기억할 테니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밝혔다.

임세원 교수는 1996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안암병원 임상조교수를 거쳐 2006년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겼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국민 의사’로 불리는 이시형 박사와 ‘소아정신과 명의’ 노경선 교수 등이 기틀을 마련했고 오강섭, 신영섭, 신동원 교수 등 정신건강의학과 명의들이 포진한 곳이다.

임 교수는 20년간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를 돌보며 10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정신건강의학 분야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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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삼성병원

그는 지난 2011년 개발된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보듣말)’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해왔다. 지난 2016년에는 자신의 우울증 극복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출간해 환자와 공감대를 키우기도 했다.

한편 임 교수가 생전 SNS에 남긴 글에서 환자를 보듬는 마음이 묻어나 슬픔을 더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받은 편지를 모아둔 작은 상자가 가득 찼다”며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임세원 교수가 SNS에 올린 글 전문.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였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 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EP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