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이는 6·25전쟁을 보는 중국(당시에는 중공·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이다. 한국전쟁을 보는 중공의 시각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항미원조를 결정한 인물은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중국공산당 중앙 주석 마오쩌둥. 그는 중공군 장군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최근 한 내부소식통의 회고에 따르면, 중공군 장군들은 대부분 6·25전쟁 참전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6·25전쟁 당시 윈난성 당 위원회 선전부에서 일했다는 장모씨는 “마오쩌둥은 (6·25전쟁 참전과 관련해) 장군들에게 조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하지만 아무도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장군들은 중국이 오랫동안 전쟁(국공내전)을 치른 후라서 더 이상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그후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중공군은 너무 많다. 상당수는 투항한 국민당군이다. 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저우언라이 총리가 동의하면서 이른바 ‘인해전술’로 불리는 엄청난 숫자의 파병이 단행됐다.
인해전술은 엄청난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전술이다. 대개 아군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고 병력을 쏟아붓는 경우를 나타낸다.
기동력을 살려 상대보다 병력의 우위를 차지하는 전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실제 6·25전쟁 당시 중공군은 기동력을 살린 움직임으로 국군과 유엔군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병력 우위로 승리하려는 전술인 동시에 투항한 국민당군을 없애려는 마오쩌둥의 음험한 속셈의 결과물이었다.
이런 내용은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한 ‘혁명의 진상, 20세기 중국사(革命的真相·二十世纪中国纪事)’에도 실렸다.
이 책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국민당과 내전 당시 투항한 병사 100만명을 최전선으로 보내 총알받이로 희생시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발표한 6·25전쟁 중공군 공식 사망자수는 15만2천명이다. 그러나 구소련 공식문서에서 드러난 사망자수는 100만명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주의 정권이 역사교과서에서 6·25전쟁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