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학교’ 탈출, 결코 쉽지 않았다

By 이 충민

부산 기장군 대변리에 위치한 초등학교 이름은 얄궂게도 ‘대변초등학교’였다.

사실 이 학교의 이미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름이다. 교정 앞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꼬마 시인 학교’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한 예쁜 학교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학교 전경(한국학중앙연구원)

하지만 이 민망한 교명은 무려 54년간 이곳 출신 학생들의 여린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냈다.

축구대회 때 잘 뛰던 대변초등학교 선수들이 ‘똥 학교’라 외치는 상대편 야유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시 영어 뮤지컬 발표회 때 놀림 때문에 주눅이 들어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기도 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한 교사도 “아이들이 수학여행 때 버스에 ‘대변초등학교 수학여행단’이라는 글자를 보고 타 학교 학생들이 놀리자 풀이 죽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고 전하기도 했다.

백과시전에 소개된 초등학교 이미지(두산백과)
2007년 당시 대변초등학교(sukzintro.net)

이렇게 무려 54년 동안 ‘똥 학교’로 놀림 받던 학생들은 마침내 부학생회장 하준석 군(5학년)의 ‘교명 변경’ 공약으로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준석 군은 “대회나 공모 같은 데 나가면 사회자가 ‘대변초등학교 나오세요’라고 하면 다른 초등학교 학생들이 똥이나 변기 초등학교라고 비웃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듣기 거북하다는 이유만으로 유서 깊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교명을 바꿀 수 없다는 졸업생과 마을 주민이 많았다.

학생들은 차근차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전교생 70여 명이 동창회와 마을 어른들에게 직접 편지를 썼고 시민 4천 명의 지지 서명도 받았다.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학교명 변경에 앞장 선 하준석군(용암초등학교 제공)

처음에는 철없는 투정으로 치부하기엔 아이들의 상처가 너무 깊다는 걸 깨달은 어른들은 하나둘 동참했고, 마침내 지난해 4월 말 실시된 교명변경에 대한 졸업생 찬반 문자투표에서 드디어 찬성이 83%에 이르렀다.

드디어 올해 3월 2일 입학식에서 ‘용암초등학교’로 명패를 바꿔 달며 이 노력은 성공했다. 용암은 대변의 옛지명이다.

용암초등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