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했던 삼성 등 국내 4대 기업을 비롯해 대북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산림청과 직접 접촉했다고 중앙일보가 31일 보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주한 미 대사관이 삼성·현대차·SK·LG 등 지난달 방북했던 주요 기업 등에 직접 전화해 방북 과정에서 논의됐던 기업 차원의 협력사업 추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가 남북 간에 진행되는 대북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려는 목적과 함께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한·미 간 속도를 맞추려고 한 시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사관은 또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현재 북한과 우선 협력을 추진하는 산림청과도 별도 접촉했다. 산림청은 대북제재 완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양묘장 현대화 등을 위해 이미 내년도 예산 1137억원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앞서 미국 재무부는 평양공동선언 직후인 지난달 20~21일 국내 7개 은행과 관련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대북제재 위반 관련)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는 등 강도 높은 우려를 국내 은행 측에 표명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협 과속을 우려한 탓에 미국 정부가 속도 조절 등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원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는 현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민간과 담당 부처를 대사관과 재무부 등이 직접 챙기는 것”이라며 “일종의 ‘한국 정부 패싱’”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업들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4대 기업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맞다. 하지만 구체적 요청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기업은 혹시 모를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등에 대비한 비상 대책팀도 가동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한 경제인은 17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 4대 기업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등으로 미국 정부는 4대기업 이외 기업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방한한 미국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9일 남북 교류를 주관하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28일에는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을 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각각 면담했다.
미국 국무부 팔라디노 부대변인은 “비건 특별대표가 방한한 목적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