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평가가 난해한 6.4(한,중,영)

[www.ntdtv.com 2012-09-06 12:52 PM]

중국의 저명한 지식인 야오잰푸(姚監復)는 신사기(新史記)잡지에 중국 농촌개혁의 아버지 두룬성(杜潤生)의 6.4문제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6.4는 1989년 6월 4일에 있었던 천안문 광장 학살사건을 말합니다.

담화기록에는 6.4문제에서 장쩌민이 깨끗하지 못하고 6.4가 없었다면 장쩌민이 총서기가 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두룬성은 6.4의 공정한 평가는 장쩌민 통치에 대한 부인이 되기 때문에 6.4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야오잰부는 2005년 3월17일 두룬성의 6.4문제 담화를 신사기잡지에 등재하며 두룬성 탄생 100주년을 경축했습니다.

두룬성은 그 당시 담화에서 장쩌민이 6.4문제에서 깨끗하지 못하고 6.4가 없었다면 장쩌민이 총서기가 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 사학교수 류인취안(劉因全)은 장쩌민이 6.4 이전부터 민주운동을 탄압한 선두주자로서 개혁파들을 억압하기 위해 보수파들의 환심을 살 많은 조치들을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전 사학교수 류인취안]
“장쩌민은 사실상 6.4학생들의 피를 밟고 베이징으로 갔고 중난하이로 갔습니다. 그는 6.4사건에서 철저히 이익을 얻었습니다.”

두룬성은 또 장쩌민이 상하이 세계경제도보를 폐간하여 1989년 학생시위를 더 한층 격화되게 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역사자료 기록에 따르면 1989년 4월15일 후야오방이 병으로 별세한 후 세계경제도보 총 편집장이자 공산당원인 친번리(欽本立)는 그날의 신문 1면 톱기사 위치에 후야오방에 애도를 표시하고 사설칼럼을 내어 후야오방을 추모하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쩌민의 심한 질책을 받고 해임되었습니다.

당시 세계경제도보는 대륙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신문으로서 학술계와 청년학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도보가 장쩌민에 의해 전례 없이 폐간되자 언론인들과 많은 지식인들이 89년 민주화운동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두룬성은 6.4의 정당화는 사실상 장쩌민 집권세력에 대한 부정인 바, 이것이 6.4 평가의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순원광(孫文廣)은 장쩌민이 6.4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산둥대학 퇴직교수 순원광]
“공산당의 합법성에도 연관됩니다. 문화대혁명이 한차례 겁난이었고 6.4 역시 한차례의 겁난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판결하고 총살했습니다. 아울러 자오즈양, 후야오방이 이끈 정치개혁을 단칼에 종결시켰습니다. 이것은 더 큰 역사적 반동이었지요.”

[류인취안]
“만약 6.4를 정당화 하면, 장쩌민이 6.4를 준비하고, 학살을 실행하고, 6.4 이후 보수주의자들과 함께 반동 투쟁을 벌인 내용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장쩌민과 그 일당들은 철저히 파멸하고 맙니다.”

그러나 피에 얼룩진 장쩌민은 6.4 탄압 이후에도 계속해서 진(眞),선(善).인(忍)을 따르는 파룬궁수련생들을 탄압하여 수천수만 가구의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진상망 보도에 따르면 2002년 10월 22일,장쩌민은 파룬궁수련생에 의해 반인류죄와 집단학살죄로 미국일리노이주 북구 법정에 기소된 후 해외 파룬궁수련생에 의해 연속적으로 스위스, 영국, 호주, 벨기에, 스페인, 타이완, 독일, 캐나다, 그리스, 그리고 홍콩에서도 반인류죄와 집단학살죄로 기소되었습니다. 21세기 인류 최대의 기소사건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NTD 뉴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