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聞】《求是》副總編自縊 外界猜測多
중공중앙의 이론 간행물인 구시 잡지 부편집장 주톄즈(朱鐵志)가 26일 새벽 잡지사 지하주차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중공 관영언론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만 밝힐 뿐, 자살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외부 세계는 주톄즈가 자살한 원인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주톄즈의 친구 왕진유(汪金友)가 발표한 글에 따르면 6월 25일 주톄즈는 낮에는 출근하지 않고 저녁 9시경이 돼서야 회사에 도착했고 26일 새벽 1시경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주톄즈의 자살 원인은 아직도 조사 중이지만, 중국 언론은 자살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고 일률적으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만 보도했습니다. 중국 작가 류쉬이(劉緒義)가 맨 처음으로 주톄즈의 자살 소식을 웨이보에 올렸지만, 그 글은 즉시 삭제됐습니다.
중국 차이신왕(財新網)도 주톄즈의 자살 소식을 보도했지만, 오래지 않아 삭제됐습니다. 차이신왕은 주톄즈의 친구가 한 말을 인용해 주톄즈의 자살 원인은 화병이거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주톄즈는 독립적인 인격, 독자적인 견해, 독특한 표현 등의 결핍이 지식인으로서 가장 두려운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던 것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하기 10일 전, 잡문(雜文, 수필) 연구토론회에 마지막으로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성(黨性)과 인성을 유기적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잡문을 쓰는 건 건축 노동자가 고공에서 작업하는 것과 흡사해서 안전에 주의해야 하고 탁자에서 손발을 떼면 안 된다.”
전 산둥(山東) 옌타이(煙台)대학 교수 장중순(張忠順)은 이런 모순이 중국 내 수많은 지식인의 공통적인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중순, 전 옌타이대학 교수]
“그가 저보다 일곱 살 많지만 동년배로 칩니다. 왜냐하면 그가 느낀 일부 것들, 사회 환경, 정치 분위기, 각 방면에서 느낀 것들과 우리가 느낀 것이 당연히 모두 공통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이렇게 체제 내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저한테도 친구가 있고 동료도 있어서 그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합니다. 주톄즈 씨가 세상을 버린 건 당연히 정치적인 커다란 환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도 한 명의 문인이라, 문인이 처해 있는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인격과 당국의 이런 체제, 이런 문화가 틀림없이 충돌을 일으킵니다. 제 생각에 이건 많고도 많은 지식인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겁니다.”
한편 국외 언론들은 주톄즈의 자살 원인에 대해 온갖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국외의 한 중국어 언론은 주톄즈의 자살이 전 중앙판공청 주임 링지화(令計劃) 사건과 관계있을지 모른다고 전했습니다.
[스스(石實), 중국문제 전문가]
“중국에서 하는 말은 (주톄즈가) 화병이라는 것이고, 국외에서는 링지화 사건에 연루됐다는 겁니다.”
작년 10월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순시조가 인민일보와 구시 잡지사에 대해 대가성 뉴스, 사기성 뉴스 등 경제적 부패 정황과, 선전기율 위반 및 정치적 점검 태만 등의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순시조의 피드백은 또한 청렴성 문제에 대한 단속 의지가 약하고, 권력행사에 대한 감독관리가 부족하며, 개별 기사에 대한 정치적 검토를 엄격히 하지 않아 실수가 있었고, 동시에 “관계에 따른 기사, 인정에 따른 기사”를 실었다는 등의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중국문제 전문가 스스(石實)는 단순하게 보면 또 다른 하나의 사건과 주톄즈의 자살이 시간상으로 겹쳐진다고 말했습니다.
[스스]
“그의 부인은 예전에 중련판(中聯辦, 중앙정부 홍콩 주재 연락사무소)에서 일부 업무를 맡았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듯이 현재 왕치산(王岐山)의 순시조가 홍콩 마카오 사무소와 기본법위원회 같은 홍콩 마카오 관련 일부 기관에 들이닥쳤습니다. 이런 것도 그(주톄즈)가 일을 벌이게 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상으로 보면 이것이 또 하나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주톄즈는 1960년에 출생해 1978년 베이징대학 철학과에 합격했고 졸업 후에는 구시의 전신인 홍기(紅旗) 잡지에 배치됐습니다.
취재 주즈산, 편집 상옌, 후반작업 저우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