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聞] 구카이라이의 운명을 결정한 5 장소

 

전 충칭(重慶)시 당위원회 서기 보시라이(薄熙來)의 부인인 구카이라이(谷開來·57)가 최근 무기징혁으로 감형돼 여론의 관심대에 올랐다.

 

복수의 중국언론은 15일 베이징시 고급인민법원이 지난달 구카이라이에 대한 감형 안건을 공시했다고 보도했다.

 

구카이라이는 2011년 친분이 있던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혐의로 이듬해 2년 집행유예 사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

 

중국 웨이신(微信·중국판 카톡) 공식계정 ‘정치국’(政知局)은 ‘구카이라이의 운명을 뒤바꾼 네 곳’이라는 글을 올렸다. 

 

첫 번째는 베이징 둥청(東城)구 신카이루(新開路) 후퉁(胡同·베이징 옛골목) 71호로 보시라이의 옛 자택이다.

 

이 주택은 보시라이가 2004년 상무부 부장(장관) 재임시절 베이징에서 머물던 곳으로 지난 2013년 8월 보시라이 재판 당시 아내 구카이라이의 증언을 통해 주소가 언급돼 대중에 공개됐다.

 

두 번째는 충칭시 당위원회 건물 3층이다. 보시라이의 오른팔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과 영국인 사업과 닐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와 만나 비리 사업을 의론하던 곳이다.

 

2011년 11월 13일 밤, 구카이라이는 이 건물 3층에서 난산리징(南山麗景) 홀리데이 호텔로 이동해, 16동 1605호실에 머물고 있던 닐 헤이우드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닐 헤이우드가 술에 취하자 미리 준비한 독약 물을 마시게 해 사망케 했다. 이곳이 세 번째다.  

 

마지막 네 번째는 허베이성 옌청(燕城) 감옥이다. 이 곳은 구카이라이가 복역 중인 곳으로 남편인 보시라이가 수감된 친청(秦城) 감옥에서 약 70㎞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빠뜨린 지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다롄(大連)이었다. 

 

시사평론가 성쉐(盛雪)는 “다롄에서 머문 기간은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두 사람의 인생 전환의 이정표가 됐다”고 평했다.

 

보시라이는 1992년부터 8년간 다롄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1999년 랴오닝성으로 전근발령받았으며, 2002년 랴오닝성 성장으로 승진됐다.

 

재미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보시라이가 부부급(副部級·차관급)에서 정부급(正部級·장관급)인 랴오닝성장으로 발탁된 것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은 다롄에서 완성됐다. 보시라이는 다롄과 랴오닝에서 재직하며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1999년 7월 20일 당시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고, 보시라이의 승진과정에는 파룬궁수련인들의 선혈이 가득 뿌려졌다. 보시라이는 다롄 시장과 랴오닝 성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형 감옥과 노교소를 신축하거나 확충했고, 다롄에서는 파룬궁 수련인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을 가장 먼저 실시했으며 수련자들의 시신을 암거래했는데, 구카이라이는 이러한 계획에 깊이 개입했다.

 

탕징위안은 “그들 부부는 장기적출 살인으로 장기를 팔아 돈벌이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신을 팔아 재차 돈벌이를 했다. 모골이 송연케 하는 이런 범죄에서 구카이라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성쉐는 “그들은 사람들에게 전시행정을 하면서 공적쌓기에 열중하는 한편, 뒤에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파룬궁을 박해하고, 시체 가공공장을 운영했다. 나중에는 시체를 가공해 만든 상품으로 세계 각지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중화권 유력지 대기원(大紀元)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가 영국에서 업체를 설립해 구카이라이가 판매하는 파룬궁 수련인 시신을 수입하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생체에서 장기를적출하고 시체를 암거래하는 데 개입해 결국 입막음당하게 됐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