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聞] 헤어졌던 세 자매, 워싱턴에서 만나 장쩌민을 고소

 

[앵커]

파룬궁을 상대로 한 중공의 불법 탄압이 16년째 계속되는 동안 셀 수 없는 파룬궁 수련생의 가정이 파괴되고 수련생이 살해되는 참극이 속출했습니다. 다롄(大連) 출신인 왕춘룽(王春榮), 왕춘잉(王春英), 왕춘옌(王春彥) 세 자매는 8년 동안 헤어졌다가 마침내 미국 워싱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이들은 최근 각자 중공 최고법원에 장쩌민을 고소하면서 탄압의 원흉을 징벌하고 정의를 회복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기자]

왕춘룽, 왕춘잉, 왕춘옌 세 자매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다롄 출신입니다. 이들은 각각 회계사무소 대표이사, 무역회사 이사, 병원 간호부장을 지냈습니다. 1998년 다롄시 중신(中心)병원에서 일하던 왕춘잉이 먼저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왕춘잉, 둘째, 파룬궁 수련인, 전 간호부장]

“저는 1998년 6월 22일 기쁘게도 파룬궁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하기 전에 저는 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앓고 있었는데, 갑상선 기능이 저하돼서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을 11년째 먹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20년을 넘게 일했지만, 전혀 방법이 없었고 다롄시에 있는 병원을 전부 찾아 다녔지만, 아무 도움이 안 됐습니다. 나중에 파룬궁 수련을 하니까 그 병이 저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파룬궁)가 대단히 신기하고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파룬궁을 언니랑 동생한테 소개했습니다.”

 

[왕춘룽, 큰언니, 파룬궁 수련인, 전 회계사무소 대표이사]

“진(真), 선(善​​), 인(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다 보니 저의 모든 것이 변했고, 가족이나 회사 직원들이 모두 변했다면서 제가 정말정말 선량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스스로를 아주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대표이지만) 공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고 이익을 아주 담담하게 봤습니다.”

 

한 집안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는 기쁨에 빠져있을 때 중공은 오히려 파룬궁에 대한 불법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왕 씨 삼 남매는 여러 차례 불법 체포, 재산 몰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왕춘룽의 회사도 억울하게 폐쇄 당했고 80여 명의 직원이 연루됐습니다.

 

[왕춘룽]

“언제나 청렴하고 효율이 높던 하나의 집단이 이렇게 단번에 흩어졌습니다. 한 명의 아이라고 치면 14년 동안 애지중지 길렀는데, 갑자기 요절했으니 제 마음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바로 제가 회사를 잃고 직원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1999년 이후 세 자매가 불법으로 감금된 시간은 모두 합해 16년입니다. 경찰은 그녀들이 신앙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온갖 고문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왕춘잉]

“2인용 침대 위에서 양 손을 침대 양 옆으로 묶인 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일어날 수도 없고 웅크릴 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열여섯 시간 동안 양 손이 이렇게 넓은 띠로 단단히 감겨 있었고, 무릎과 발목 관절도 모두 아주 넓은 띠로 여러 차례 단단하게 감겨 있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불법 탄압은 왕 씨 세 자매와 가족에게 심각한 정신적 압력과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왕춘잉]

“제가 두 번째로 마산자(馬三家)에서 석방돼 나오니 딸이 저한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정말 못 견디겠어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엄마 얼굴을 보지만, 저녁에 돌아왔을 때는 파출소에 잡혀갔을 지도 몰라서 난 정말 미칠 것 같아요.”

 

왕 씨 자매들은 가족들이 말려드는 것을 원치 않아 차례차례 외국으로 향했습니다. 막내 왕춘옌은 여권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단신으로 태국으로 도피했고, 언니와 딸과 8년 동안 헤어졌습니다.

 

[왕춘옌, 셋째, 파룬궁 수련인, 전 무역회사 이사]

“남편은 제가 정처 없이 떠돌 때 아들의 대학 진학 지도와 집안일을 도맡아서 처리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여러 차례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근 일 년 동안 소란을 피워 대서 참다못해 경찰을 때렸는데, 결국 경찰한테 누명을 쓰고 온 몸을 구타당해, 응급치료도 소용없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29일 장쩌민을 고소했습니다.”

 

2015년 11월, 여러 곳을 전전하던 왕춘옌은 마침내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가족을 만났습니다. 세 자매에게 오랜만의 재회는 소중했습니다.

 

[왕춘룽]

“동생들을 한 곳에서 보니 8년 전 일이 생각났고, 마음속으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큰 동생과 작은 동생 머리를 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세상에 나와서 대법을 수련하게 됐어. 사부님께서 우리한테 두 번째 생명을 주셨고, 우리가 걸어온 이 길은 모두 정정당당한 길이야. (사부님은) 바로 명백한 진상 만 말씀하신 거야.’ (이 말과 함께) 우리는 눈물이 쏟아져 통곡했습니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세 자매는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이 징벌을 받고 정의가 신장되는 그날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NTD 뉴스 린위에위(林樂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