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중국에서 공안부 등의 기관은 물샐틈 없는 국민 감시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일반인에게도 정보 수집을 강요합니다. 며칠 전 난두망(南都網)의 편집인을 지낸 국안(國安, 국가안전부) 요원 한 명이 인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는데요, 그는 자신이 강요에 의해 국안 소속 정보요원이 되어 홍콩에서 정보를 수집했다는 등의 내막을 고백했습니다.
[기자]
리(李) 선생은 광둥(廣東)성 남방보업그룹(南方報業集團) 산하의 난두망에서 편집인을 지냈습니다. 리 선생의 말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중국 사회의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왔고, 언젠가는 중국에서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왔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2007년 공민사회망(公民社會網)을 개설해 시민사회, 법률제도, 비정부조직 발전 등과 관련한 제안을 하는 한편, 허웨이팡(賀衛方), 후싱더우(胡星斗) 등 저명한 학자의 글을 실었습니다.
리 선생이 인도의 네루대학에 유학할 당시에는 마침 산둥(山東)성의 맹인 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장기간 자택 연금 상태였으므로 리 선생은 천광청을 보러 산둥으로 가자는 호소문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2012년 5월 졸업 후 귀국한 리 선생에게 허난(河南)성 신샹(新鄉)시 국안 비밀요원이 찾아와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리 선생의 글 하나에 800여 개의 댓글이 달린다며 자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리 선생을 체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리 선생이 국안의 정보요원 직을 맡아 준다면 처벌을 면하게 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11월, 리 선생은 졸업장을 받으러 인도로 출국했습니다. 이때 그는 타이완 사람 한 명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리 선생에게 중국에 관한 평론 문장을 써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리 선생은 귀국하자마자 신샹시 국안에 체포돼 일주일 동안 심문을 받았고 국가안전을 해쳤다는 죄명을 받고 국안의 정보수집에 협조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리 선생]
“예를 들어 최근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어떤 일이 있으면 그들은 저에게 민간 운동권이나 학자들이 어떻게 보는지, 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찰하게 합니다.”
리 선생이 겪은 일에 대해 중국 헌정(憲政)학자 천융먀오(陳永苗)는 깊은 동정을 표하면서 리 선생이 국내의 안정유지 체제, 국안 체제의 희생자라고 말했습니다.
[천융먀오, 중국 헌정학자]
“중국(중공)의 안정유지 시스템이나 국안의 통제 시스템은 파고들지 않은 곳이 없고 통제하지 않는 곳도 없습니다. 누구든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이런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가 자신들에게 정보를 보고하게 합니다.”
나중에 리 선생은 남방보업 산하의 난더우망에서 편집인이 되어 평론 채널을 책임지고 과학기술계와 많은 연계를 맺었습니다.
[리 선생]
“그들은 제가 일하는 남방도시보에 커다란 흥미를 보이면서 주요 인물과 주요 기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반공사상을 가졌는지 조사하도록 시켰습니다.”
리 선생은 통제대상 학자들의 블랙리스트를 폭로하면서 자신도 두다오빈(杜導斌)의 글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에 올랐었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9월, 중국 남방도시보 산하의 ‘21세기망(網)’ 소속 언론인이 체포됐습니다. 그보다 반 년 전에 국안은 리 선생을 찾아 ‘21세기경제보도’와 관련한 상황을 탐문하면서 리 선생에게 조사에 협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후 국안은 리 선생에게 명확하게 세 가지 측면의 정보를 중점적으로 요구했는데, 하나는 민간운동, 또 하나는 광둥(廣東)의 노동운동, 나머지 하나는 홍콩, 예를 들어 홍콩의 중환점령운동과 홍콩인들이 본토인들의 인권활동을 어떻게 지도하는지 등이었습니다.
리 선생은 자신이 앞으로는 시민사회를 주장했지만, 뒤에서는 국안의 협박을 받아 국민의 정보를 수집해 보고했고 이로 인해 커다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공이 무너질 때도 자신이 여전히 국안의 스파이 신분으로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리 선생]
“사실 마음 속으로는 제가 이렇게 그들의 일을 도왔다는 사실이 정말 불편합니다. 제가 알기로 중국은 이런 독재 집권을 통해 우리에게서 뉴스의 자유, 대부분의 민주 활동, 민주를 위한 언급, 인권운동가를 지지하는 사람을 철저히 제거했는데, 제 생각에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리 선생은 중국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3년 말, 그는 아이의 호적을 등록한다며 마침내 국안의 수중에 있던 여권을 되찾았지만, 아이가 어려서 탈출 계획을 미루어야 했습니다.
올해 10월 30일, 리 선생은 결국 소원대로 다시 한 번 인도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유엔 이민국과 미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하면서 국안의 마수에서 철저히 벗어나 자유를 얻고싶다고 말했습니다.
NTD 뉴스 천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