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역사왜곡, 카이로선언의 주역은 마오쩌둥?

 

 

[앵커]

중공이 자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반 파시즘 전쟁 승리와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서사시 형태의 블록 버스터 영화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새 영화와 함께 발표한 포스터를 보면 당시의 주역이었던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 외에 네 번째 주역이며 당시 회의에 참석한 중국 지도자 장제스가 마오쩌둥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중공의 행위에 대해 외부 세계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기자]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대 열병식에 맞추어 중공군 바이(八一) 영화제작소는 2차대전 영화, 카이로 선언을 제작하고, 며칠 전 최신 포스터를 공개했습니다.

포스터에는 모두 네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탕궈창(唐國強)이 배역을 맡은 마오쩌둥,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과 구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있고 그들의 사진 아래에 카이로 선언이라는 타이틀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의에 참석한 지도자이며, 회의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장제스(蔣介石)는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포스터의 가장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카이로 선언은 2차대전 중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1943년, 2차대전의 형세 변화에 따라 중, 미, 영 3국 수뇌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회의를 열었는데요,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 수상 처칠과 중화민국 지도자 장제스가 대 일본 작전에 어떻게 협조할 것인지와 전후에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토론했습니다.

 

회의 후에 발표한 카이로 선언을 보면 중, 미, 영 3국은 일본에 대한 무조건 항복 요구를 고수했고, 1차대전 이후에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점령한 모든 섬의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또 특히 일본이 점령한 만주, 대만, 펑후제도(澎湖群島) 등 중국의 모든 영토를 중화민국에 돌려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카이로 선언입니다.

 

장제스가 있다는 이유로 스탈린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회의에서 통과된 카이로 선언을 인정했습니다.

 

[주신신(朱欣欣), 전 허베이(河北) 인민방송 편집인]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에 중화민국을 대표해 참석했으니 장제스의 국민정부가 합법적인 정부를 대표한 것이고, 그가 진정하게 당시 중국인의 합법적인 대표였습니다. 동시에 항전에 있어서 국민정부가 주력이었음이 확실해집니다.”

 

타이완 역사관 관장 뤼팡상(呂芳上)은 15일, 항전 시기 중공은 줄곧 국민정부(國民政府)의 지도에 복종했으므로 주력이라 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카이로 회담 포스터에 마오쩌둥을 넣은 것이 대단히 황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안팎의 수많은 사람도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이로 선언이라, 마오쩌둥과 반 푼 어치라도 관계가 있나?” 또 한 사람은 “아전인수도 분수가 있지, 너무 지나치다.” “역사 왜곡은 후대를 해친다.”라고 말하는 등 비난의 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전직 허베이 인민방송 편집인 주신신은 중공이 이 영화를 찍은 의도는 마치 일당 독재의 정당성이 역사 속에 있다는 듯 우겨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신신]

“이 카이로 선언은 당연히 중공과 관계가 있고, 항전 승리도 결국 중공을 도와준 꼴입니다. 그들은 국민당이 항전으로 힘을 소모한 걸 이용했는데, 스스로 기회를 잡았다고 우쭐댑니다.”

 

주신신은 카이로 선언이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점령 종식이라는 조건을 만들었고, 동시에 마오쩌둥이 정권을 탈취하고 항전의 열매를 훔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한 언론은 1995년판 ‘마오쩌둥 외교 문선(文選)’의 제 535항에 있는 마오쩌둥의 글을 공개했습니다.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좋은 교사가 되었다. 첫 째, 그가 장제스를 약화시켰고, 둘 째, 우리가 공산당 영도의 근거지와 군대를 발전시켰다. 항전 전에 우리 병력은 스스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2만여 명으로 감소했다. 8년 항전 중에 우리 군대는 120만으로 발전했다. 당신이 보기에 일본은 우리를 크게 도운 것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상하이(上海) 부시장을 지낸 판한녠(潘漢年)은 바로 중공의 간첩이었습니다. 그는 항전 기간에 명령에 따라 중공을 대표해 일본군과 상호 불가침 밀약을 맺었고, 일본군 및 왕징웨이(汪精衛, 난징에 친일 괴뢰정부를 세운 인물) 정부와 긴밀히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종전 후인 1955년 그는 마오쩌둥에 의해 내부간첩죄로 체포돼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신신은 2차대전 기간에 중공이 일본과 결탁해 국군을 공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2차대전의 역사를 왜곡해 자신들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구실로 삼고 있지만, 검증에 부딪혀 들통나게 되어있으므로 국내와 세계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영화가 예정대로 상영되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맹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NTD 뉴스 이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