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闻] 생체장기적출,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나(상)

  

[앵커]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생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해 팔아넘기는 끔찍한 범죄, 이른바 생채장기적출에 대한 조사와 폭로가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생체장기적출 범죄는 한 통의 제보전화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요. 당시 전화를 받았던 언론인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두꺼운 장막에 가려져 있던 잔혹범죄의 폭로 과정을 보시죠.

 

[기자] 2006년 3월 7일 중화권 언론 대기원(大紀元)의 미국 LA지사 쉬(徐) 지사장은 자신을 일본 언론인이라고 밝힌 한 제보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는 피터 씨(가명)와 대기원이 나눈 두 번째 전화통화였습니다. 첫 전화통화에서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제보를 하고 싶다”고만 했던 피터 씨와의 두 번째 전화통화에서 쉬 지사장은 심상치 않은 사건임을 직감했습니다.

 

[쉬 지사장, 대기원 LA지사] “자신에게 CCTV(폐쇄회로)영상이 담긴 테이프가 있다고 했다. 나쁜 경찰이 여성 파룬궁 수련생을 강간하는 장면이 녹화됐다고 했다. 우리에게 제보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기에 그와 (만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약속장소에 나타난 피터 씨가 쉬 지사장 등 대기원측 사람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전화통화에서 알린 것보다 더 끔찍한 내용이었습니다.

 

[왕칭화(王清華), 대기원 LA지사 인쇄과장] “테이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바로 쑤자툰(蘇家屯)병원과 생체장기적출에 대해서 말했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이틀 뒤인 3월 9일 ‘대기원’이 피터 씨와의 첫 번째 인터뷰를 보도하면서였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시 쑤자툰(蘇家屯)구에 비밀 집단수용시설이 설치됐으며 2001년부터 6천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수감됐다고 폭로했습니다. 또 이 시설에는 소각로가 설치됐으며 수용자의 장기를 적출해 판매한 뒤 시신은 소각로에 화장시켜 아무도 살아나간 사람이 없었다는 충격적 내용을 전했습니다.

 

이어 3월 16일 대기원은 또 다른 증인 애니(가명)의 특별인터뷰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에는 비밀 수용시설의 위치가 쑤자툰구 ‘랴오닝성 혈전 중서결합병원’(遼寧省血栓中西結合醫院) 별관이라는 등 좀 더 상세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이곳에서 애니는 전 남편과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근무를 했는데, 외과의사인 전 남편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사이에 파룬궁 수련생 약 2,000명의 각막을 적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애니, 생체적출 증인] “남편은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내가 모를 것이라고 했다. 파룬궁 수련생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숨이 붙은 채로 장기를 적출 당했는데, 적출된 뒤엔 소각됐다. 어떤 이는 바로 소각로에 던져져 태워져 흔적조차 없어졌다.”

 

약 한달 뒤인 4월 20일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을 갖기로 한 날, 애니와 피터 씨는 백악관 부근 맥퍼슨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도둑질한 중공의 범죄를 재차 증언했습니다.

 

생체장기적출을 가리고 있던 장막의 첫 균열은 이렇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순탄한 과정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대기원 LA지사 쉬 지사장은 피터 씨가 자신과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위협을 받았으며 기사를 내보내는 당일 날 폭로를 철회할까 고민도 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마침 소식을 듣고 LA에 도착한 대기원 고위층이 피터 씨와 오랜 소통을 가진 끝에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고, 또 다른 증인 애니를 이틀 뒤 소개받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 기사를 내보내려 한 것도 고심 끝내 내린 결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기원 총편집장 궈진(郭君)은 “그 며칠 동안 심리적 압박이 컸다. 자다가 일어나 다시 생각할 정도였다. 만약 이런 기사를 경솔히 냈다가는 의혹과 고의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언론사의 공신력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당시 (다른 경로로) 증거자료를 일부 확보하고 있었지만 파룬궁 수련생 다수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에 감히 증인으로 나설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렇다면 대기원에서 생체장기적출 폭로기사를 세상에 알릴 결단을 내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두 증인은 엄청난 압박을 받으면서도 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용기를 냈을까요? 금지된 소식다음 시간에 전해드리겠습니다.

 

NTD 뉴스 상옌(尚燕), 리즈위안(李智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