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7월 24일 오후 6시를 넘기고 중기위(中紀委)가 갑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허베이(河北) 성위원회 서기 저우번순(周本順)의 낙마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같은 날 저우번순은 베이징에서 열린 징진(京津)협동발전업무추진회의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우융캉(周永康)의 대(大) 비서로 불리던 인물이 왜 저우융캉의 비서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을까요? 또 왜 낙마 시점이 지금일까요?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중국 차이신망(財新網)은 24일, 저우번순의 낙마가 허베이성에서의 업무 경력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허베이 관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는 또 허베이 지도층 인사의 말을 인용해 저우번순이 10년 동안 중앙 정법위 부비서장과 비서장을 지내며 오랫동안 저우융캉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저우융캉의 주요 부하들이 줄줄이 낙마한 기간에 저우번순이 재난을 면한 소식은 늘 커다란 화제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저우융캉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도 저우번순이 무사하자 사람들은 그가 이미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그가 무사히 착륙했다고 말했었습니다.
[헝허(橫河), 시사평론가] “저우융캉은 우리가 알기로 몇 개의 큰 파벌을 거느리고 있는데, 석유방(石油幫), 쓰촨방(四川幫), 비서방(秘書幫), 그리고 정법방(政法幫)입니다. 저우번순은 비서방의 최후 1인입니다. 비서방이 모두 실각한 이후에 그가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또 정법계통 쪽에서 그는 저우융캉 정법방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중앙 정법위 비서장입니다.”
저우번순은 저우융캉의 공개된 범죄에 연루됐을 뿐아니라 그의 성격과 경력으로 볼 때 중공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저우융캉의 파룬궁 탄압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탕바이차오(唐柏橋), 뉴욕 중국민주대학 교장] “저우번순은 저우융캉의 비서장으로 있던 과거 5, 6년 동안 실질적으로 선두에 섰습니다. 그는 지휘자였는데, 예를 들자면 리둥성(李東生) 같은 사람도 모두 저우번순의 압잡이입니다. 저는 아주 똑똑히 아는데, 저우번순은 수법이 지극히 악랄한 사람입니다.”
[헝허] “시간상으로 아주 분명합니다. 성(省) 공안청에서 중앙 정법위원회로 옮기더니, 곧장 중앙정법위 비서장이 됐는데, 이런 일(승진)도 모두 파룬궁 탄압과 완전히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은 비서장이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내부에서 조종을 했습니다. 그런데 승진이 발표된 시간으로 보아 그는 저우융캉과 같이 파룬궁 탄압에 참여했습니다.”
저우융캉의 대 비서라는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2년 전 저우융캉이 낙마한 이후에 저우번순은 어떻게 중앙정법위 비서장에서 허베이 성위원회 서기로 낙하산 발령이 났을까요?
[탕바이차오] “저우융캉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태도를 표명했을 수 있습니다. 당중앙에 협조하고, 중공의 현 집권층에 협조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아주 잘 한거죠”
저우번순은 허베이로 전근한 이후 시진핑이 참석한 허베이 성위원회 상임위원회 민주생활(民主生活)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했습니다. 이후 당국의 부패 척결 논조에 보조를 맞추었습니다. 지금은 왜 또 갑자기 낙마 소식이 나왔을까요?
[화포(華頗), 베이징 시정관찰가] “베이다이허 회의가 곧 열리는데, 베이다이허는 친황다오시(秦皇島市)에 있고, 또 허베이성 관할 지역입니다. 그래서 시진핑이 확실한 안전을 위해 베이징과 허베이라는 중요한 지역에 대해 일종의 방비를 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허베이 성위서기를 끌어 내리고, 베이징 군구(軍區)를 대대적으로 조정하는 건 모두 시진핑의 큰 그림 중 일부입니다.”
뉴욕 중국민주대학 교장 탕바이차오는 저우번순과 저우융캉이 사사로운 모임이 아닌 동맹관계이고, 저우번순의 등급은 벌써 전 국가안전부 부부장 마젠(馬建)과 전 공안부 부부장 리둥성 등을 넘어섰다며, 그래서 저우번순이 체포된 것은 특수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탕바이차오] “저우번순을 체포했다면, 이건 새로운 돌파구입니다. 이건 어떤 개념일까요? 말하자면 만약 그들이 원래 저우융캉의 일파였던 저우번순을 건드린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 실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일을 한 사람은 얼마든지 체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따지웬시보(大紀元時報)는 저우번순이 지난해 세상에 알려진 보시라이, 저우융캉 정변의 가담자 18명 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국의 부패척결 성과는 그 정변 가담자 명단과 점점 들어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우번순 낙마 후에 정변 가담자 명단 중에서 아직도 낙마하지 않은 고위 관료는 장쑤(江蘇) 성위서기 뤄즈쥔(羅志軍)과 현직 중공 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입니다.
NTD 뉴스 창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