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聞] 아버지가 산 채로 시체실 냉장고에 (3) (한,중)

[www.ntdtv,co,kr  2015-05-15 09:50 AM] 

 

 

 

 

[앵커]

지금까지 2회에 걸쳐 충칭시 세무사 전직 간부, 장시칭(江錫清)씨가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가, 가족과 면회한 다음날 사망한 사건을 전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은 가족은 시체보관 냉동고 안에 갇힌 장시칭(江錫清)씨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인공호흡을 했는데, 경찰이 끌어냈습니다. 가족은 부검을 요구했지만, 과연 진상은 밝혀질까요?

 

 

[기자]

장시칭(江錫清)씨 딸, 장헝(江宏)씨가 부검을 요구하자 충칭시 검찰은 부검을 허락했지만, 당국이 지정하는 기관에서만 부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공정한 부검을 할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장헝(江宏), 사망자 장시칭(江錫清)씨의 장녀]

“황젠(黄健) 검찰원 주감처장(駐監處長)도 우리처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으니, 부검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검하는 기관은 검찰원이 지정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당국을 믿지 않기에, 당국이 지정하는 검시기관에서 검시하면 무슨 조작을 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정하는 것을 승낙하지 않으면 부검도 하지 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우리는 승낙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부검을 강행하고 화장해버렸습니다.”

 

 

[기자]

장헝(江宏)씨는 2개월 만에 마침내 부검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사인이 “심장병급성 발작” 이었는데 해부 결과는 왼쪽 갈비뼈 3개 골절, 늑간 출혈, 급성 폐울혈, 부종 등이었습니다.

 

중국에서 25년간 의사로 종사했고 하버드대학 의과 대학원 교수인 왕지웬(汪志遠)씨가 이 보고서를 분석했습니다.

 

 

[왕지위안(汪志遠), 하버드대학 의과 대학원 교수]

“보고서를 보면 고문 등으로 외상을 입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골절이나 조직울혈, 장기울혈 등은 죽기 전의 외상으로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

장헝(江宏)씨가 보고서를 들고 충칭시 검찰을 찾아가 왜 아버지 늑골이 몇 개나 부러졌느냐고 물었더니 상대는 “구명치료 하던 중 부러져버렸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런 대답에 장헝(江宏)씨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씨 가족들이 재차 따졌더니 충칭시 검찰 관료는 무심코 깜짝 놀랄 사실을 털어냈습니다.

 

 

[저우보린(周柏林), 충칭시 검찰 제1지원 부처장]

“시산핑(西山坪) 노동교양소 경찰이 장시칭(江錫清)을 학대한 증거는 없다. 같은 방 사람도 학대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시체는 화장했다. 보존된 것은 그의 장기뿐이고 장기는 표본으로 보존되어 있다.”

 

 

[기자]

마침내 아버지가 심한 폭력으로 빈사 상태에 빠져 산 채로 시신냉동고에 넣어졌다가 내장을 적출해 장기는 표본이 되고 시신은 증거 인멸을 위해 화장한 것을 알았습니다.

 

장헝(江宏)씨는 비명횡사한 아버지 한을 달래기 위해 시산핑 노동교양소를 고소하여 막후 흉수의 책임을 추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국은 장헝(江宏)씨 가족에 대한 감시, 협박, 유혹, 납치 등 수단으로 소송을 취하시키려 하다가 급기야 변호사에게 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장카이(張凱) 변호사와 리춘푸(李春富) 변호사는 경찰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9년 경찰에 불법 납치당해 고문당했습니다. 장카이(張凱)변호사는 수갑을 차고 쇠사슬에 밤새 매달린 후유증으로 공포증에 걸렸으며, 리춘푸(李春富) 변호사는 두 귀에 부상을 입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리춘푸(李春富) 변호사]

“우리는 변호사로서 많은 시민이 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수갑을 채웠습니다. 우리의 절차나 증명서는 합법적이었는데도 파출소에 끌려가 폭행당했고 감금되었습니다. 보통 시민이라면 더 참혹했을 겁니다.”

 

 

[란즈쉐(蘭志學), 인권 변호사]

“전국의 변호사가 그 사건을 알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국의 불법 행위를 비난하고 규탄하고 있습니다.”

 

 

[기자]

장헝(江宏)씨 가족은 몇 차례 납치된 후에야, 당국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기는커녕 거꾸로 가족 전원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고 깨닫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장헝(江宏)씨는 이번에 아버지의 비극을 카메라 앞에서 밝혔습니다. 몇 년 전, 진상을 알렸을 때는 모두가 놀라면서 믿지 않았지만, 서서히 이해와 동정, 응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큰 변화가 찾아오자 장헝(江宏)씨는 드디어 증오를 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갈 길은 험해도 서서히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NTD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