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聞] 유명인사가 기억하는 4·25 (01) 위메이쑨 (한,중)

 

 

[www.ntdtv.co.kr  2015-04-24 06:22 PM]

 

 

전 국무원 비서 위메이쑨(俞梅蓀)이 본 4·25

 

[앵커]

16년 전 4월 25일,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이 베이징 국가신방사무소(國家信訪辦所)에 도착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를 그만 두라는 민원을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전 국무원 비서 위메이쑨(俞梅蓀)은 NTD 기자에게 당시 베이징시 공안국 관리가 파룬궁 수련생의 교양있고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고 크게 찬양했고, 당시 관영 언론도 4.25 청원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유명 인사가 기억하는 4·25` 시리즈 첫 번째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기자]

1999년 4월 25일 동틀 무렵, 베이징 국가신방사무소가 있는 푸요우(府右) 거리와 시안먼(西安門) 대로에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중공 당국에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교란을 멈추고, 톈진(天津)에서 불합리하게 체포한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4월 22일, 전 국무원 비서 위메이쑨은 당시 파룬궁 수련생의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태도가 베이징에서 널리 알려졌고 공안 관계자도 모두 감탄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대학 동창 한 명은 당시 베이징시 공안국에서 처장급 관리로 있었습니다. 4·25 사건 발생 수 개월 후 이 관리는 동창회에서 파룬궁 수련생의 성품을 칭찬했습니다.

 

 

[위메이쑨, 전 국무원 비서]

“제 동창은 베이징 공안국 차장이고 베이징 정법위원회의 처장급 간부였습니다. 그 친구는 아주 감명을 받았다며, 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푸요우 거리에 서서 하루를 보냈는데 그들이 떠날 때, 그들이 흩어질 때 땅에는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며 너무나 교양이 있어서 모두가 그들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위메이쑨은 80년대와 90년대에 국무원 경제법규연구센터(經濟法規研究中心)와 국무원 법제국에서 입법(立法) 업무에 종사했고, 종합비서팀 부팀장과 팀장을 지내면서 일부 중요한 법률과 법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는 법적인 관점에서 푸요우 거리가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의 청원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위메이쑨]

“그들은 거기에 서서 교통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고, 질서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이었고, 거기에서는 계엄이 선포되지도 않았고, 통행이 금지되거나 서 있는 것이 금지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너무나 질서있게 서 있었고 대표가 국무원과의 교섭에 나서서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고 법에 의거해 자신들에 대한 압박을 중지해 달라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위메이쑨은 당시 관영 언론이 4·25 청원을 긍정적으로 보도해 주었고,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3명의 파룬궁 수련생 대표와 접견한 사실을 보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위메이쑨]

“모든 정부 측 신문은 주룽지 당시 총리가 그들을 크게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며 해산을 부탁하고, 그들의 문제를 고려하고 해결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습니다. 주룽지는 태도가 아주 좋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습니다. 주룽지는 그들을 승인하고 인정했습니다.”

 

 

당시 모든 상황을 지켜 본 위메이쑨은 마음 속으로 기쁨을 느꼈고, 몇 가지 커다란 진전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메이쑨]

“하나는 만여 명이 푸요우 거리에 서서 그렇게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얌전하게 요구사항을 전한 것인데, 이건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진전입니다. 두 번째는 분명히 주룽지가 그들을 만났고 사이가 아주 좋았는데, 아주 우호적으로 해산을 부탁하면서 보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아주 좋은 진보였습니다.”

 

 

당시 서방 언론도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파룬궁 수련생과 정부의 진보적인 자세를 칭찬했습니다. 또 관민 사이에 그런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며 중공에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장쩌민의 분노 속에 사라졌습니다. 그는 주룽지가 너무나 연약하게 대처했다고 비난하면서 파룬궁에 대해 강력한 진압을 전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장쩌민은 4월 25일 저녁,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과 다른 지도자들에게 서신을 보내 마르크스주의가 파룬궁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겠느냐며 질책했습니다.

 

 

CNN은 2001년, 보도를 통해 이는 장쩌민이 중공 중앙정치국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책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당시 정치국 상임위원이었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리펑(李鵬), 국무원 총리 주룽지, 전국 정치협상회의 주석 리루이환(李瑞環), 국가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등이 모두 장쩌민의 전략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위메이쑨은 이후 중공 당국이 보복에 나서면서, 주룽지와 대화한 수련생을 체포해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써 신뢰를 크게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NTD 뉴스 친쉐(秦雪)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