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5-03-12 05:20 PM]
[앵커]
중국공산당(중공) 양회기간 중 ‘중앙경위국 국장 차오칭(曹清)이 동급의 베이징군구 부사령으로 전출되고, 부국장 왕샤오쥔(王少軍)이 국장으로 승진’되었다는 소식에 국제 언론이 일제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앙판공청을 정리한 후 ‘대내시위(大內侍衞)’인 중앙 경위국에 대대적 인사이동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기자]
3월 10일자 캐나다 싱타오(星島)일보 보도에 의하면 ‘자사 기자가 4일 인민대표대회 개막식장에서 중앙경위국 국장 차오칭을 촬영한 바 차오칭의 군복에 ‘베이징군구’ 견장이 달려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차오칭의 부서 이동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9일 기자가 한 장령에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공군 쉬샹첸(徐向前) 원수의 아들 쉬샤오옌(徐小岩) 중장은 ‘중앙 경위국에서 베이징군구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 차오칭이 베이징군구 견장을 착용한 것은 의아하다. 차오칭만 제외하고 기존 경위국원들은 대부분 타부대로 이동했다.’고 말했습니다.
9일 홍콩 경제일보도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최근 중앙군사위는 시진핑의 승인 하에 중앙경위국 고위층 인사를 크게 조정했으며, 이번 인사조정은 중앙경위국 내부뿐만 아니라, 중공중앙책임자,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등 5대 부서 주요 영도자의 안전경호부서에 대해서도 책임자와 팀원들을 임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기존 중앙경위국 소속 장교와 사병들은 대부분 근위대로 재배치되었고 38군 출신의 정예부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스스(石實): 중국 전문가]
“베이징 방어망은 3층 구조입니다. 제1층은 38군으로서 주로 바오딩(保定)시에 있습니다. 제2층은 수비대(衞戍區)입니다. 수비대에는 1사(師), 2사, 3사가 베이징 방위를 담당합니다. 제3층은 중앙경위국입니다. 따라서 상무위원들이 비상시에 기댈 생명줄은 중앙 경위국인 셈이죠.”
‘대내시위(大內侍衛)’라고 불리는 중앙경위국은 중공 최고 영도층의 안전경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특히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7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밀착 경호합니다. 양회가 시작되기 전 중앙경위국 인사를 개편하여 국장까지 교체한 것은 통상적인 것이라 보기 힘들다고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은 말합니다. 특히 같은 시각에 군대는 궈보슝의 아들 궈정강(郭正鋼)의 집을 수색했고 중기위는 ‘경친왕’을 빗대어 쩡칭훙을 비난했습니다.
[탕징위안]
“현 상황에서 시진핑이 자신의 밀착경호대를 교체한 것은 그가 반부패 호랑이 사냥에서 아주 중대한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금의 허점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것이지요. 차이칭이 전출한 것만으로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그가 시진핑의 신임을 충분히 받지 못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 스스는 ‘차이칭이 정변에 연관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자는 있다. 예컨대 전 중앙판공청 주임 링지화가 아들의 페라리 자동차 사고현장을 감추려하자 차이칭은 중앙경위국 무장병력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스스]
“당시에 링지화가 사건을 처리한 후, 왜 사건이 더 이상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이는 차이칭이 은폐를 도와 주었기 때문임이 명백합니다. 바로 이점이 중앙경위국과 차이칭이 직무를 유기한 것입니다.”
[화포(華頗): 베이징 시사 관찰가]
“차이칭은 중앙경위국의 ‘노인’으로서 뿌리깊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차이칭의 직책상 시진핑은 그를 자기 심복으로 대치하지 않으면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국관방은 62세의 차이칭의 인사이동을 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차이칭은 마오쩌둥이래 최단명 중앙경위국 국장이 되었습니다. 역대 중앙경위국 국장중 왕둥싱(汪東興)이 29년 근속으로 가장 장수했고, 이어서 양더중(楊德中)이 16년, 유시구이(由喜貴)가 13년, 차이칭이 8년 근무했습니다.
장쩌민이 중공 총서기에서 물러난 후, 유시구이는 중앙경위국 당위서기의 명의로 경위국을 계속 장악했습니다. 홍콩 ‘동방일보’는 어떤 의미에서 후진타오가 ‘꼭두각시 황제’가 된 이유는 군권을 장악하지 못한 것 외에도 중앙경위국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양회 기간 중 ‘암살, 쿠데타’ 등등 소문이 무성하긴 했지만, 평론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는 일종의 위협일 뿐 발생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합니다.
NTD 뉴스 주즈산(朱智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