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12-15 01:21 AM ]
중공 당국이 난징 대학살 77주년이 지난 올해부터 12월 13일을 국가 추모일로 지정했습니다. 중공의 각 대형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중 시진핑도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한 평론가는 77년이나 지나서 중공이 갑자기 추모일을 지정한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중공이 집권기간 굶겨 죽인 수천만 명의 중국인, 그리고 집권자가 일으킨 각종 정치운동으로 사망한 중국인까지 추모해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보도를 보시겠습니다.
13일,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서는 당시 사망한 동포를 애도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시진핑은 직접 이곳을 찾아 기념관 앞 광장에서 행사를 개막했습니다.
[쑨린(孫林), 난징 민주운동가]
“친구한테 듣기로는 이번 추모 행사는 격식도 상당히 높습니다. 행사장 주변 건물의 모든 주거공간과 사무실은 1주일 전부터 창을 여는 것이 금지되고 층마다 경관 2명이 배치됐다고 합니다.”
민주운동가인 쑨린 씨는 중공이 추모에 나선 것은 일본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이며, 당연히 현재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중공 언론은 추모일 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일본에게 엄중한 비난과 경고를 동시에 전했습니다. 인민일보는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당시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하고 6주 만에 약 3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징추(荆楚) 씨, 인터넷 작가]
“난징대학살 추모가 도리에 맞는 일이지만, 하나의 기준을 가져야지 이중 잣대를 가지면 안 됩니다. 과거 중공의 포위 공격으로 창춘(長春)에서 30만 명이 아사한 것도 당연히 추모해야 하고, 탕산(唐山) 대지진으로 사망한 40만 명도 추모해야 합니다.”
역사 자료를 보면 1948년, 중공 군대가 창춘을 포위했는데, 당시 창춘은 국민당 군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중공은 장춘의 식량을 소모시키기 위해 시민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 30만 명을 굶어 죽게 했습니다. 이후 중공은 이 인위적인 대참사를 덮어 감추면서 일말의 가책도 없이 “피를 흘리지 않고 창춘을 해방시켰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작가 징추는 탕산 대지진 후 중공이 세계의 구호를 모두 거절하며 피해를 키워 24만 명이 사망하고, 16만 명이 상처를 입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네티즌 자오스빈(趙詩斌)은 “49년 이전에는 장춘 포위로 30만 명이 아사하고, 49년 이후에는 3천만 명이 아사했다. 그들도 추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지적했습니다.
네티즌 싱싱바이신바(醒醒吧-辛巴)도 “30만을 챙기면서 3천만을 을 무시하다니… 모두 애국의 적이다!!!”라고 웨이보에 썼습니다.
징추는 중공이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기근으로 3천여만 명을 굶겨 죽이고도 추모식을 하지 않는다며 77년 지난 난징 학살만 선택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상투적인 세뇌수법이며, 민족 간의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수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화포(華頗), 베이징 시사정치분석가]
“우리가 37년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입힌 상처를 기억하겠지만, 중공이 반우파 투쟁,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 문화대혁명 등으로 우리 민족에게 입힌 상처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입힌 상처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총노선 : 1953년에 공표. 비 사회주의적 경제규모가 최소 80.1%나 되는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경제를 사회주의화한 사유재산 강제 몰수 운동)
쑨린은 세계대전 중에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것과 비교할 때, 평화적인 상황에서 아사당한 중국인, 그리고 탱크와 총으로 살해된 비무장 학생들을 우리가 더욱 높은 격식을 갖추어 기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중공은 표면상으로는 일본을 향해 크게 떠들어 대지만, 내심으로는 일본에 감사하는 것 같습니다.
1964년 7월 10일, 마오쩌둥은 당시 일본 사회당 위원장 사사키 코죠우(佐々木更三)에게 일본군이 중국 절반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할 수 없었다며, 그래서 일본군은 중공의 은인이자 구세주라고 말했습니다.
1972년 일본과 국교를 체결했을 때도 마오쩌둥은 당시 총리 타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에게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중공은 장개석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중공은 일본에 전쟁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외부에서는 중공이 난징대학살을 추모하는 것은 그저 형세의 흐름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NTD TV 톈징(田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