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4-09-22 03:00 AM]
앵커:
북한은 9월 25일 최고 인민 회의 제13기 2차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에서는 군방면 중요 지도자의 직무를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의외로 여기는 것은, 이 회의에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북한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은 후에 김정은의 신체에 확실히 이상이 발생했다고 시인했습니다. 분석 보도를 보시죠.
기자:
25일 열린 북한 중요 회의에서 북한 정계는 새로이 조정되었습니다. 조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룡해과 인민무력부장 장정남이 모두 군 직무를 내려놓고 지방으로 전근발령 받았습니다. 총정치국장 황변선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당선되어 최용해를 대신해 북한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중대한 회의에는 김정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집정 3년 이래 처음으로 중요 회의에 결석한 것입니다. 국제 언론에는 젊은 김정은의 신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줄곧 나돌고 있습니다.
26일, 신화사는 조선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의 보도를 인용하여, 김정은은 확실히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20여일 공개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이래 북한 관방 언론이 그의 신체 상황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입니다.
금년 7월 8일의 북한의 김일성 서거 20주년 기념대회에서 김정은은 눈에 띄게 걸음을 비틀거렸고, 특히 왼쪽 다리의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우판(伍凡), 미국 중국어 잡지 ‘중국사무’ 편집장]
“내가 추측하건대 대략 두 가지가 원인입니다. 하나는 내부 투쟁이 줄곧 중지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모부를 죽였으므로 아래 사람들이 불만을 품었고, 이로써 또 다시 내부 투쟁에 빠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가 너무 많이 먹어 병이 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금년에 31살인 김정은은 작년 12월, 그의 친 고모부이며, 조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장성택을 ‘국가전복 음모 행위에 종사했다’는 중죄로 사형을 언도하고 즉시 처결했습니다. 당시 소문에 의하면 김정은은 장성택 전 가족을 몰살했다고 합니다.
장성택이 처결된 후, 최용해가 조선 군부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몇 달이 지나서 그의 직위는 김정은의 주요 측근인 황병선에게 대체됐습니다. 그런데 황병선은 당시까지 군 방면의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온갖 수단을 써서 자신의 배다른 형제인 김정남을 추살하려 들었고, 그 외에도 조선 중앙 통신사의 지난 해 12월 보도에 따르면, 부친이 남겨준 ‘고명대신’ 7명 중에서 5명을 숙정해 버렸습니다. 남겨놓은 두 사람은 모두 80이 넘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 대, 조부 대와 마찬가지로 김씨 왕조를 보전하기 위해 줄곧 피의 숙청을 별여 왔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마저 다 죽여 버리려 한다고 우판 편집장은 지적합니다.
타이완 정치대학 중국 군사 문제 연구 전문가 딩수판(丁樹範) 교수는, ‘베이징 당국은 북한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성택이 살해된 후 베이징은 북한과의 연계가 줄어들었으므로 그에 대한 이해가 크게 줄었다’고 말합니다.
금년 7월, 중공 총서기 시진핑은 한국을 방문하면서 중국 지도자가 “먼저 평양을 방문하고, 후에 서울을 방문하던” 관례를 바꾸었습니다.
홍콩 대공망은 일본 분석가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장성택을 숙정하자 시진핑은 김정은에 대해 크게 불만스러워했다. 중공은 북한이 일찍부터 여러 번 김정은의 중국 방문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했고 오히려 선양군구 제39군을 백두산 일대에 배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중공의 지지에 의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조사한 ‘북한 무역국 통계’에 따르면, 북한과 무역 관계가 있는 국가는 10여개이며, 그중 첫째 무역국인 중국과의 무역량은 전체의 55%로서, 그 다음인 인도와의 교역량의 6배 정도에 달합니다.
‘봉황주간‘은 지린성 동북아 연구센터 연구원 천룽산(陳龍山)의 말을 인용하여, 북한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중공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봉쇄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에게 양식과 석유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라 지적합니다.
2012년 7월 5일 한국 ‘중앙일보’는 지난 30년 간, 중공은 북한에 1,00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공이 왜 수시로 ‘반목’할 수 있는 북한을 지원하는가에 관해서 시사평론가 싱톈싱(邢天行)은 이렇게 평론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성이 공(共)이기 때문입니다. 중공의 외부 원조는 여태껏 국가 이익, 인민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닌, 공산 사상과 제도를 위한 원조인 것입니다,’
NTD뉴스 천한(陳漢)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