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과 왕전 ‘허상’ 둘러싸고 격렬 투쟁(한,중,영)

[www.ntdtv.co.kr 2014-05-23 08:35 AM]

앵커 :
지난 1980년대 말, 중국의 한 시대를 풍미한 영상 다큐 ‘허상(河殤, 강물의 비가)’은 ‘6.4 사건’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허상’의 대표작가 쑤샤오캉(蘇曉康)은 NTD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허상’이 ‘6.4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당시 중공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과 중공 원로 왕전(王震)이 이 작품을 둘러싸고 격렬한 권력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습니다.

기자 :
1989년 중국의 ‘6.4 사건’ 이후, 중공은 지명수배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 속에는 지식분자 7명이 들어있었습니다. 옌자치(嚴家祺), 바오쭌신(包遵信), 천이쯔(陳一諮), 완룬난(萬潤南), 쑤샤오캉(蘇曉康), 왕쥔타오(王軍濤), 천쯔밍(陳子明) 등이 그들입니다.

이중에서 쑤샤오캉은 중국 80년대의 보도문학 대표자 중의 하나로 인정받습니다. ‘6.4’ 이후 그는 중공에 의해 ‘89년 학생운동’의 막후 조종자로 지목되었고 미국에 망명해야 했습니다.

쑤샤오캉은 2009년 언론에 일개 작가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작성한 주요사범 명단에 들게 된 것은 중공 원로 왕전이 친히 지목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중공 총서기 자오쯔양의 생전 녹음록에 따르면, 1988년 10월 중공의 ‘3중전회’에서 왕전은 갑자기 다큐 영상물 ‘허상’을 공격하면서 당국에게 정식 비판을 요구했습니다.

쑤샤오캉은 5월 21일 NTD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오쯔양과 왕전이 ‘허상’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 내막을 말해주었습니다.

[쑤샤오캉, 다큐멘터리 ‘허상’ 대표작가]
“자오쯔양은 이것이 일개 문학작품일 뿐이라고 하면서, 문화대혁명 시절의 착오를 바로잡으려면, 중앙은 지금부터 다시는 어떤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에 대해서도 태도를 표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후야오방(胡耀邦) 시절부터 시작된 매우 중요한 새 정책입니다. 이 정책에 의거해서 자오쯔양은 ‘우리 중앙이 일개 작품에 대해 태도를 표시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개인의 관점에서 태도를 표할 수는 있어도 우리 중앙을 대표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쑤샤오캉은 왕전이 ‘허상’을 공격한 것은 ‘취한 노인의 진짜 뜻은 술에 있지 않은 것’처럼 실제로는 자오쯔양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었고 자오쯔양도 이를 명백히 알고 있었다고 술회합니다.

[쑤샤오캉]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원인은 우리들이 ‘허상’ 속에 자오쯔양의 이미지를 적지 아니 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사용한 것은 덩샤오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전은 감히 덩샤오핑을 거론하지는 못하고 자오쯔양만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후야오방을 하야시켰고 이제 자오쯔양을 하야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2세가 그 뒤를 계승하게 하고자 했지요.”

쑤샤오캉은 말합니다. ‘이는 당내 권력투쟁이며 왕전과 또 한명의 중공 원로 보이보(薄一波)가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중공의 전 영도자 덩샤오핑은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개혁의 두 주요 지도자로 발탁하여 한명은 총리로 한명은 총서기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내부의 보수파 원로들은 자신들의 2세인 아들과 사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길 원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하야시켜야 했고 ‘6.4 사건’ 발생 이전에 이미 그들은 후야오방을 실제로 하야시켰습니다.’

쑤샤오캉은 ‘87년 허상의 첫 방영을 4대 중앙 영도자인 자오쯔양, 리펑(李鵬), 양상쿤(楊尚昆), 리셴녠(李先念)이 보았을 때, 자오쯔양은 “왜 어르신을 욕하나?”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기억합니다.

[쑤샤오캉]
“이는 당시 라디오TV부 부장이 내게 친히 말해준 것입니다. 그는 ‘여보게, 우리 총서기가 자네 작품을 아주 안 좋아했다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총서기가 후일 바오퉁(鮑彤)을 시켜 그렇게 공개적으로 ‘허상’을 지지해 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오쯔양 총서기는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를 접견했을 때 뜻밖의 선물 하나를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허상’의 비디오테이프였습니다. 이를 신화사 통신이 보도하자 왕전은 대노했습니다.”

쑤샤오캉은 자오쯔양이 뼈 속 깊이 전통적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왕전에 대항하여 ‘허상’을 공개 지지한 것은 문학 창작 자유 정책을 유지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쑤샤오캉]
“따라서 여러분은 자오쯔양이 정직한 인물임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는 사석에서 자기 사람을 아끼는 것과, 공석에서 정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별개의 일로 생각했습니다.”

쑤샤오캉은 중국문명은 근대에 이르러 낙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중국의 65년을 장악하고 중국문화를 훼멸시키고 국민의 도덕을 타락시킨 것은 진정 통탄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1988년 9월, 왕전은 그의 총비서 탕위(唐玉)를 시켜 ‘인민일보’ 사장 탄원루이(譚文瑞)에게 다큐 ‘허상’에 대한 비평을 쓰게 했습니다. 그 한 구절은 이와 같습니다. “그는 공산당과는 살부(殺父)의 원수사이다!” 이말을 들은 쑤샤오캉은 즉시 ‘허상’ 제작진에게 아버지가 탄압받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쑤샤오캉은 후일 외국에 거주하면서 비로소 왕전이 가리킨 사람이 자오쯔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쑤샤오캉은 당 내부의 인물로부터 자오쯔양의 아버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자오쯔양의 부친은 공산당의 표현법에 따르면 지주에 속했습니다. 자오쯔양은 입대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의 다른 부대가 그의 고향에 진입했을 때 그의 부친은 체포되어 감옥에 이송되었습니다. 후일 부친은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NTD 뉴스 친훼(秦雪)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