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선임 기자 가오위 실종(한,중,영)

[www.ntdtv.co.kr 2014-05-01 02:54 PM]

앵커 :
4월 24일부터 국제사회는 베이징 선임기자 가오위(高瑜)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가오위 기자의 친구는 27일 소셜 네트워크에 그녀를 찾는 광고를 냈습니다. “가오위 실종, 원인 불명”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는 즉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기자 :
가오위의 실종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6일 있었던 회의에 그녀가 결석하면서부터입니다. 친구들이 그녀의 집을 직접 찾아갔으나 문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었습니다. 친구들 몇 명이 인터넷 통신수단으로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회신이 없었습니다.

[왕장쑹(王江松), 베이징 학자]
“7, 8일이나 되었네요. 가오위 큰 누님이 사라진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누님의 외아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불통이고 전혀 연락되지 않습니다. 누님에게 무슨 죄가 또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고요.”

국제사회는 가오위의 실종 시간은 4월 24일에서 26일 사이라고 판단하면서 트위터의 ‘사람 찾기’에 글을 올려 가오위가 지난주 목요일(24일) 이후 소식이 두절되었고 휴대전화의 전원도 꺼져있다고 밝히고 직계가족의 전화번호를 올렸습니다.

[왕더방(王德邦), 베이징 민주운동가]
“현재로써는 그녀가 언제 실종되었는지 확정 지을 수 없습니다. 대략 23일 24일 경일 것입니다. 그녀의 스카이프는 25일 26일에도 온라인 상태라 메모를 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호출할 수가 없습니다. 실종의 구체적 원인이 불투명하고 소식도 없습니다. 친구들이 ‘사람 찾기’를 시도했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NTD 기자 천한(陳漢)은 24일 오전 9시 몇 분 경 가오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통화가 가오위와 국제사회 사이의 마지막 통화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기자 : 가오위씨 안녕하세요.

가오위 : 아, 정말 미안해요. 지금 막 나가야 하거든요.

기자 : 언제 돌아오실 건가요?

가오위 : 좀 늦게 들어올 거에요. 오늘은 온종일이에요! 미안해요!

4월 25일부터 중국은 ‘6.4’ 안정유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가오위는 이 때문에 당국에 구금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오위는 원래 5월 2일에 홍콩의 국제 중국어 문예 교류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5월 말, 그녀는 중국어 문예 교류 독립활동에 참가하려다가 베이징 공항에서 억류당한 적이 있습니다.

[우이싼(武宜三), 홍콩 시사평론가]
“그녀가 실종된 원인을 두 가지로 봅니다. 우선 중국어 문예 교류회 시상식이 올해도 홍콩에서 열립니다. 가오위가 홍콩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를 며칠간 잡아둘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6.4’가 다가오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녀를 감시감독하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독일 라디오 방송 ‘도이체 벨레’는 가오위가 실종되기 하루 전인 23일, 그녀가 ‘도이체 벨레’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녀는 후야오방(胡耀邦)의 기념문집 ‘당성 대 인성’ 상편을 보내주었고 토요일에는 하편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시국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트위터에 접속한 시간은 22일이었고 그녀는 ‘다시 보냄. 20일 장쩌민이 양저우(楊州)의 하프 마라톤 현장에 등장’이라고 말을 남겼고 사진도 올렸습니다.

[왕더방(王德邦)]
“최근에 그녀가 쓴 문장이 몇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장쩌민의 사진을 올린 것이 화근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중국은 여러 차례 강제 실종의 방법으로 저항 인사들을 탄압했습니다. 최근의 한 예를 든다면, 베이징 대학 법학 석사인 인권운동가 차오순리(曹順利)가 작년 실종 일 개월 후에야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후 그녀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가오위의 실종은 여러 나라의 인권조직으로부터 고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이싼]
“중국의 민감 인물 통제는 이렇게 심합니다. 가오위처럼 과감한 발언을 하는 사람은 모두 감시 대상이 됩니다. 이는 당국이 매우 허약한 존재임을 증명해 줍니다. 그들은 늘 살아있는 사람도 두려워하고 죽은 사람도 두려워합니다. 마치 린자오(林昭)가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났지만 수많은 사람이 쑤저우에 있는 그녀의 묘지에 성묘합니다. 그러니 무장경관이나 사복경찰을 파견하여 감시하다가 100여 명이나 체포한 것 아닙니까. 듣기로는 아직도 감시받는 사람이 300여 명이라고 합니다.”

가오위는 오랫동안 언론자유 사상을 지켜왔고 사회적 병폐를 과감히 비판하여 일찍부터 국제언론의 표창을 받곤 했습니다. 그녀는 ‘중국신문사’부터 베이징에서 출판되는 ‘주간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근무하다가 ‘주간 경제학’의 부편집장을 맡았습니다. 두 차례 투옥되기도 한바 첫 번째가 1989년 ‘6.4 사건’ 때 비밀리에 체포되어 강제 실종 450일을 겪었습니다. 두 번째는 홍콩 ‘경보(鏡報)’에 글을 실어서 6년 형을 받았습니다.

NTD 뉴스 슝빈(熊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