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정협위원’의 페이퍼 컴퍼니(한,중,영)

[www.ntdtv.co.kr 2014-03-01 02:20 AM]

앵커 :
중국의 ‘미녀 부호’라고 불리는 류잉샤(劉迎霞)가 헤이룽장성 정협위원에서 축출되자 중국의 여러 언론은 그녀에 대한 조사를 발표했습니다. 류잉샤의 억대 기업과 교수, 석사학위 등 여러 타이틀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작년에 형을 판결받은 충칭 공안국장 왕리쥔(王立軍)이 가지고 있던 ‘현장심리연구센터’ 역시 마찬가지로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초중고 졸업생 출신의 이런 교수, 전문가, 연구원들의 진가는 얼마나 될까요? 그들에게 기회를 준 사회 환경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기자 :
얼마 전 중국 ‘법제일보’와 ‘정저우 만보’는 2월 20일 헤이룽장성 정협위원 직위를 박탈당한 부호 류잉샤가 창업한 ‘하얼빈 샹잉(翔鷹) 주식회사’는 페이퍼 컴퍼니였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얼빈 곳곳을 찾아봐도 그 회사의 사무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다롄 이공대학은 류잉샤가 겸직교수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헤이룽장성 공상련(工商聯)’ 직원은 관련자료 조사 후 류잉샤의 경력 중에 ‘헤이룽장성 공상련 부주석’ 신분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 류잉샤의 베이징 대학 석사과정 학력과 학사과정 학력도 없었다고 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류잉샤는 15세 때 간호병으로 입대하여 2년 후 퇴역했습니다. 20세도되기 전 류잉샤는 1992년 ‘샹잉 그룹’을 창업했습니다. 2002년 류잉샤는 헤이룽장성 정협위원에 오르고 이어 성 공상련 부회장에 임명됩니다. 2003년 그녀는 전국정협회의에 뽑힌 최고 기업가로 인정받습니다.

류잉샤는 중국 언론이 선발한 2002년 ‘중국본토 10대 여부호’ 8위를 차지했습니다. 2006년 그녀는 ‘2006 후룬(胡潤) 중국본토 부호록’에 등재되었고 억대 재산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리산젠(李善監), 시사평론가]
“15세에 참전했으니 그녀가 받은 정규 교육은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그녀가 거침없이 성장하는 동안 왜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을까요. 중국에서 회사는 등록, 정기검사, 납세 등 수많은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정상적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해도 당국에 의해 고사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페이퍼 컴퍼니가 별 어려움 없이 이렇게 여러 해 지탱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사회체제에 든 병이 심각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류잉샤의 재산과 환경은 얼마 전 쓰러진 ‘석유방’과 ‘지린방(吉林幫)’ 고관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2012년 3월 중공 양회기간 중, ‘도시 인프라 협회’ 회장에 취임하던 류잉샤는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釣魚台國賓館)에서 ‘도시 인프라 기금’ 조성 기념회를 호사스럽게 열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이미 낙마한 ‘우정(郵政)저축은행’ 전행장 타오리밍(陶禮明)과 ‘페트로차이나’ 재무자산부(財務資產部) 주임 원칭산(溫青山) 등도 있었습니다. 기금 응모액 25억 위안 중 ‘페트로차이나’ 출자는 10억 위안, ‘우정저축은행’ 출자는 6억 위안이었습니다.

류잉샤는 여전히 전국 공상련 부주석, 전국청련(중화전국청년연합회中華全國青年聯合會) 상무위원, 헤이룽장 공상련 부주석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전국 걸출 창업여성’ 등 명예 호칭도 일찍부터 누리고 있었습니다.

[징추(荊楚), 중국 인터넷 작가]
“지금의 관청가(官場)는 전형적인 역 도태(逆向淘汰) 시스템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 속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고 변태 과일 썩은 채소처럼 인격 비열자들 만이 물 만난 고기처럼 활동합니다. 이것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입니다.”

2012년 NTD 조사에 따르면 중국 공안계통에는 ‘현장심리연구센터’가 두 군데 있었습니다. ‘진저우시 공안국 현장심리연구센터’와 ‘시난(西南)대학 충칭시 공안국 현장심리학 연구센터’ 두 곳입니다. 왕리쥔(王立軍)은 직접 두 군데의 주임, 교수, 박사학위 심사위원을 맡고 있었습니다.

진저우시 공안국 현장심리 연구센터는 왕리쥔을 따라 충칭시로 옮겨갔을 때 없어졌습니다. 당시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난대학 충칭시 공안국 현장심리학 연구센터’ 역시 왕리쥔의 낙마로 인해 학생 받기를 중단했습니다. 이 연구센터는 왕리쥔 빼고는 전문가가 없었습니다. 초중교를 졸업한 왕리쥔은 여기서 훈련하여 소위 교수, 연구원, 법의학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리산젠]
“교육도 안 받은 사람이 교수, 학자의 명의를 가지고 사회에서 사기극을 벌일 때 진정으로 학문에 종사하는 교수, 연구원, 학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요?”

왕리쥔의 학자 명함에 대해 현재 중국의 어떤 기자도 조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양상의 초중교 학력의 류잉샤의 과거는 현재 대서특필됩니다.

‘신경보(新京報,Beijing News)’ 평론은 말합니다. : ‘배경이 불분명한’ 아름다운 여인이 ‘불분명한 회사’를 경영하다가 이내 빛나는 사회 정치적 명함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등장한다는 이런 일은 류잉샤가 ‘유일’한 케이스가 아니다.

NTD 뉴스 류후이(劉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