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ntdtv.co.kr 2013-10-25 05:36 AM]
앵커 :
광저우에서 활동하는 신쾌보 천융저우(陳永洲) 기자를 허난성 경찰이 체포한 사건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23일, 신쾌보는 1면 톱에 자사 기자를 석방해달라는 기사를 내보낸 데 이어, 24일에도 ‘석방을 다시 청한다’는 기사를 1면에 냈습니다. 기사는 “경찰이 재판 없이 구속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기자 :
중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천융저우 사건은 이미 베이징 고위층을 놀라게 해 중기위와 중선부 모두 사건에 개입했다고 합니다. 중국기자협회와 ‘신화사’, 광전총국도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고, 천융저우를 두둔하는 경향조차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롄중커(中聯重科)’사는 태자당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어서 천융저우의 앞날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입니다.
‘신쾌보’가 1면에 자신들의 의견을 과감히 발표한 것은 중국 언론 상황상 아주 드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더욱 특이한 점은 이번 일에서 중국 기자들이 중공 선전부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다양한 추측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는 “중국 새 지도부가 중국 언론 통제 기준을 좀 더 완화해 줄 것인가”에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티베트 제10대 판첸라마 사망은 중국의 정치적 암살
해외에 망명중인 중국 유명 작가 위안훙빙(袁紅?)은 10월 24일 타이베이에서 제10대 티베트 판첸라마의 사망 진상을 다룬 새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양대 지도자는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입니다. 중공이 중국 통치권을 잡자 달라이라마는 바로 출국했고 제10대 판첸라마는 중공을 지지했습니다. 그 후 중공의 티베트 박해로 인해 생각이 바뀐 판첸라마는 중공 통치에 항의하는 ‘7만언서(七萬言書)’를 발표하고 체포됐습니다. 1978년 판첸라마는 석방돼 직무에 복귀했으나 1989년 사망했습니다. 당국이 발표한 사망 원인은 심장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안훙빙은 10대 판첸라마는 심장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중공의 모살로 사망했다고 지적합니다.
위안훙빙은 중공 태자당 관련 인물에 대한 탐방을 포함, 다년간의 조사 끝에 중공 고위층이 의료진에게 판첸라마를 독살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을 확인했습니다. 독약은 청산가리의 일종으로 피부를 통해 침투시켰습니다.
위안훙빙은 저서 속에, 판첸라마 독살 지시는 중공 고위층인 덩샤오핑, 리셴녠(李先念) 그리고 보(薄)씨 일파가 내렸다고 명확히 지적합니다.
상하이 인권운동가 천융(沈勇) 구타 치사
10월 24일 오전 7시, 상하이 푸둥 신개발지구에 살던 인권운동가 천융은 집에서부터 수갑을 찬 채 류리(六裏) 파출소로 연행됐습니다. 두 시간 후 공안이 그를 귀가 조치했을 땐 이미 기식이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식구들은 120에 응급 전화를 걸었으나 구급차가 왔을 때 천융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천융의 복부에는 밧줄로 묶인 흔적이 있고, 몸에는 많은 상흔이 있었습니다. 현재 천융의 어머니는 공안에 끌려갔고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소식에 따르면 천융의 집은 몇 년 전 현지 당국에 의해 강제 철거당했고 천융은 정부에 자기 집을 되돌려 놓든지 아니면 시장 가격으로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NTD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