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정세가 안개 속이다. 시진핑의 개혁행보가 장쩌민 전 주석의 등장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www.ntdtv.com 2013-01-13]
중국 진보성향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 사태’로 시작된 ‘언론자유’ 요구가 어디까지 확산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높아진 중국 내 개혁요구가 자칫 1989년 6.4 톈안먼사태 처럼 민주화 요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89년 6.4 당시에는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 3,000여 명이 탱크에 깔려 학살되는 등 민주화 요구가 뭉개졌다. 시위 진압에 앞장섰던 장쩌민은 그때 덩샤오핑의 눈에 띄어 국가주석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중국은 정치적으로 더욱 보수적인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장쩌민의 영향력은 후진타오 집권 내내 계속되었다.
작년 2월 초, ‘왕리쥔 사건’으로 촉발된 중국공산당 내 권력다툼은 장쩌민의 후계자로 불리던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후진타오는 그 기회를 잡아 집권 10년 만에야 실질적인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저우융캉, 쩡칭훙 등 장쩌민 세력의 격렬한 반발에 직면했다.
지난 11월 열린 공산당 제18대당 대회에서 후진타오는 예상 밖의 결정을 했다. 전면 사퇴할 뜻을 밝힌 것.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등 죽기 전까지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했던 전임 지도자들과 달리 차기 지도자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줘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진타오는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원로의 정치 간섭을 차단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에 힘입어 시진핑은 집권 초기 부패척결과 입헌정치의 꿈을 내세우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장쩌민 전 주석이 갑자기 공개 행보를 시작하며 시진핑의 개혁과 반대 행보를 시작했다. 이로써 시진핑의 개혁의지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18대 당 대회가 안정된 가운데 끝날 때만 해도 장쩌민 중심의 보수 세력과 후진타오-시진핑 중심의 개혁세력이 권력균형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시진핑의 개혁 행보에 정치적 입지가 줄어드는데 경각심을 느낀 장쩌민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균형은 일시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시진핑 시대에도 권력다툼은 계속되고 있고 연장선상에서 남방주말 사태까지 터지게 됐다.
‘남방주말 사태’는 중국 광둥(廣東) 성의 진보성향 주간지에 중국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의 신년 특집기사를 광둥 성 선전부장 퉈전(?震)이 공산당을 찬양하는 기사로 바꿔치기하면서 촉발됐다.
남방주말 기사는 시진핑이 발언한 ‘입헌정치의 꿈’과 “헌법이 보호돼야 민중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을 실었다. 시진핑은 지난 12월 4일, 중국 헌법공포 30주년 기념사에서 “헌법을 옹호하는 것이 당과 인민을 옹호하는 것이며, 헌법의 생명은 시행에 있다”고 말했다.
남방주말 기자들은 기사검열에 적극 항의하고 나섰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해당 매체 기자 수십 명이 파업에 들어갔고, 시민 수백 명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파업이 종료되고 10일 신문은 정상 발행됐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장쩌민 계열의 류윈산(劉雲山) 중앙선전부문 상무위원이 전국 언론사 지침을 보내 언론자유를 부정하는 사설을 게재하라고 요구했지만, 또 다른 매체인 신경보(新京報) 기자들은 이 지시를 거부했다. 당국은 불응하면 신경보를 폐간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른바 신경보 사태다. 이 소식이 곧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지지 물결이 일고 있다.
연예인도 동참했다. 중국의 인기 여배우이자 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는 야오천(姚晨)은 자신의 트위터에 “진실 어린 말 한마디가 전 세계보다 무겁다”는 러시아의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말과 함께 남방주말 로고도 함께 올렸다.
또한, 남방주말 사옥 앞에는 수백 명의 중국 젊은이들이 언론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이들은 시위 중 언론자유가 죽었다는 상징으로 장례식에 사용하는 국화꽃을 뿌렸다.
최근 들어 젊은이와 중산층, 지식인을 중심으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남방주말 사태’는 중국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홍콩의 빈과 일보는 “남방 주말 사태 이후 광저우, 베이징 등 전국 각지에서 네티즌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수많은 네티즌이 2년 전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던 ‘재스민 집회’보다 더 큰 항의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자유 수용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으로 이어진다. 통제된 사회 중국에서, 헌법 위에 군림해 왔던 공산당 중심의 사회에서 과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길이 열릴 수 있을까? 부패척결을 위해 필요한 법치와 언론자유는 그러나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시진핑의 선택이 궁금하다.
남방주말 사태가 악화 조짐을 보이자 후춘화 광둥 성 서기가 나섰다. 그는 8일 “파업에 대해 징계조치를 하지 않으며 이 사건에 관한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라고 약속해 파업이 이틀 만에 풀렸다. 이는 중앙 선전부의 뜻과 배치되는 처지로 시진핑의 개혁 행보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기사 검열을 직접 주도한 광둥 성 퉈전 부장은 퇴진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번 남방주말 사태는 중국사회에서 공산당의 언론검열에 저항하고 나선 첫 사건이었다. 중국의 모든 기자가 공적, 사적 자리를 막론하고 공산당의 공식견해를 앵무새처럼 읊어 온 것에 비추어 보면, 이번 사건은 혁명적인 변화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교양제도다. 한국판 삼청교육대인 노동교양소는 법원 판결 절차 없이 지방정부와 공안당국의 행정 처분만으로 최대 4년까지 인신을 구속할 수 있다. 정부와 공안 사법까지 모두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공산당 사회에서 당의 지침은 곧 법이다. 헌법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1999년부터 시작된 ‘파룬궁 탄압’이다. 당시 파룬궁 수련자들을 탄압할 아무 명분도 법에 없었지만, 장쩌민 전 주석은 탄압을 지시했다. 파룬궁을 수련했던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이 판결 없이 노교소에 불법 감금됐으며,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중국사회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통제된 언론, 폐쇄된 정보가 모든 문제를 덮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전체의 고질적인 부패는 체제 안정을 위협하고, 경제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법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시진핑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언론의 자유와 법치를 보장하면 그동안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질러온 기득권층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권력을 잡아왔던 장쩌민 세력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진핑의 ‘입헌정치의 꿈’은 그들의 기득권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중국의 정세는 부패척결, 입헌정치를 내세우는 시진핑의 개혁의지와 맞물려 요동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시진핑의 개혁의지가 어디까지 닿을 것인지, 장쩌민 세력의 반발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중국 정세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한다. 전문가들은 “알권리가 보장된 13억 중국인이 깨어난다면 그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