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형수 장기 적출 실태(4) – 위구르인 경찰의 증언(2) (한)


▲ 「장기 적출 특별차」란 사진과 같은 구급차의 개조차인가?

[www.ntdtv.com 2012-12-10]

베이징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 컨설팅에 종사해 온 ‘잃어버린 신중국(Losing the New China)’의 저자 에단 구트만(Ethan Gutmann)은 지난 9월 12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종교인과 반체제인사 장기적출’이라는 주제 공청회 증인으로서 참석했다.

구트만은 작년 12월 5일 미 정치주간지 ‘위클리 스탠다드(The Weekly Standard)’에서도 중국의 장기적출 실태를 상세하게 폭로했다.

위구르인 경찰의 증언(2)

1997년 2월 2일부터 바티아 셈시틴씨는 자신은 이름만 경찰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2년 전, 그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이닝시 시청(伊寧市西城) 공안국 마약단속반에 입대했다. 미남에 키가 크고 위풍당당한 그는 이 직업에 잘 어울렸다. 후에 자유를 찾아 캐나다에 이주한 그이지만, 자신의 당시의 뜻을 제대로 기억했다. “자신은 한족의 협력자가 아니라 비상사태의 구원자다.”라고.

몇 년 전부터 헤로인이 이닝(伊寧)지역에 범람했다. 마치 중세의 전염병처럼 위구르 젊은이를 침식했다. 그러나 바티아씨는 곧바로 눈치챘다. 헤로인 밀수는 당국이 방임하고 뒤에서는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마약 단속반에 채용한 것도 함정이었다. 한족 상사는 그에게 마약 딜러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메슈레프를 조사하게 했다. 메슈레프는 위구르족의 전통모임이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민족음악과 민족무용을 계승하고 있다. 메슈레프가 만약 헤로인의 침입을 저지하는 한방약처럼 유행한다면, 한족 통치자 정권에 곧바로 특수한 위협이 된다.

1997년 1월 초 금식을 끝내는 라마단 새벽의 밤, 이닝시 경찰서의 위구르족과 한족 경찰관 전원이 권총 검사 예정이므로 권총을 반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약 1개월 후, 권총은 반환되었지만 바티아씨 것은 없었다. 그는 한족 간부에게 이유를 물었다. “당신 권총에 문제가 있다.”

“언제 고칠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간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명단을 살짝 보면서 그에게 “당신은 이제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저녁 무렵 사실을 알았다. 한족 경찰관은 모두 총이 교부되었고 위구르족 경찰의 총은 모두 ‘문제가 있어’였다.

3일 후, 바티아씨는 그 이유가 밝혀졌다. 2월 5일, 약 천 명의 위구르인이 이닝 도심에 모였다. 그 전날, 6명의 여성이 한족당국에 체포됐다. 6명 모두 무슬림 교사이자, 메슈레프 참가자이기도하다. 정보에 따르면, 이들은 고문을 받았다. 이 항의 집회에 모인 위구르인 젊은 남성들은 두꺼운 겨울옷을 입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무기도 소지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했는지 모르지만, 한족 경찰은 그들을 향해 총을 발포했다. 

이닝사건의 사상자 수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바티아씨의 기억은 경찰의 계산으로 약 400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살인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위구르인 경찰관은 모두 범인 고문 임무를 위해 현지 감옥에 파견 됐기 때문이다. 체포된 사람은 모두 감옥에 갇혔다. 한편, 바티아씨가 본 것은, 많은 위구르인이 감옥에 들어와서 알몸으로 눈 속에 방치된 모습이었다. 안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나 내장을 손상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이닝시 주요 위구르인 진료소는 휴업 조치를 받았고, 한족 특수경찰이 병원 구급차를 파괴하고 의사 10명을 체포했다. 4 월말이 되자, 체포자가 급증하고 교도소는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위구르인 정치범이 처형되기 시작했다. 4월 24일, 그의 동료들은 정치범 8명의 총살현장을 목격했다. 거기에는 ‘장기 적출 특수 차량’과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