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단 “中태자당의 특징은 이것”(한)


▲1989년 중국 천안문학생민주화운동 리더였던 왕단(王丹)

[www.ntdtv.com 2012-12-04]

1989년 중국 천안문 학생민주화운동 리더였던 왕단(王丹)은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갈 태자당의 정치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충동적이다. 보시라이(薄熙來)가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문제를 처리할 때 한순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부시장 왕리쥔(王立軍)의 뺨을 때렸다. 왕리쥔이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하게 된 원인이다. 온화하고 겸손한 공청단 파 관리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시진핑은 몇 년 전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며 언행에 조심하면서도 중남미 방문에서 미국을 험담하고 말았다. “중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며 무의식간에 패권주의 본색을 드러냈다. 역시 충동적인 성격 때문이다. 태자당은 집안 배경으로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있으며 쉽게 기분에 좌우지된다.

둘째, 충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개성도 뚜렷하다. 공청단파 관리들은 천편일률적이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렵지만 태자당은 정반대다. 보시라이가 그렇고 왕치산(王岐山)이 그렇다.

시진핑은 새 지도부 구성원들을 대동한 첫 기자회견에서 상투적인 말투 외에 개성적인 발언을 했다. 공청단파가 양 무리 같다면 태자당은 늑대 무리 같다. 늑대들은 같은 무리에서도 개성을 중시하는 속성이 있다.

셋째, 단결을 중시하는 공청단파와 달리 태자당은 권력을 잡기도 전에 대립하고 분열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에게 불복했는데, 이런 갈등은 정책이나 노선, 개성의 차이뿐만 아니라 윗세대의 정치투쟁으로 원한관계도 작용한다. 과거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을 제외한 개국 원로들의 서열은 서로 어슷비슷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오늘날 권력투쟁에서 서로 불복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 배경이다.

넷째, 태자당 윗세대는 문화대혁명에서 박해 받았고 태자당 자신들도 인민이 되어 고통을 겪었다. 이런 경험은 인민의 언어에 능통하게 했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정치선전 하는데 능숙하게 되었다.

태자당의 정치 쇼는 후진타오 시대에 비해 강력해질 것이다. 시진핑은 권좌에 오른 후 반부패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민의에 영합할 것이다. 태자당은 인민에 다가서는 쇼를 확대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인민으로 생각하지 않고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 쇼다. 태자당은 기껏해야 사이비 민족주의자일 뿐이다.

개성은 운명을 결정한다. 태자당의 정치적 개성으로 중국의 향후 정국은 현란하기 그지없을 것이며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