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헤이우드의 스파이 신분 은폐(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여유로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영국인 닐 헤이우드의 모습.

[www.ntdtv.com 2012-11-8]

WSJ는 작년 11월 헤이우드 사인을 과음이라고 발표한 중국 경찰의 결론에 대해 영국당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를 부검 없이 화장하는 것을 막지 않은 것도 헤이우드의 스파이 활동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정부는 지난 2월 왕리쥔(王立軍)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주재 미 총영사관에 피신해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를 독살했다고 폭로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 전까지 중국에 사건조사를 요청하지 않았다.

WSJ에 따르면, 왕리쥔이 미 영사관에 머물고 있을 당시 미국정부는 영국정부에 왕리쥔이 밝힌 내용을 알렸으며, 영국은 즉시 외교관 한명을 청두에 급파했다. 하지만 이들이 청두에 도착했을 때 왕리쥔은 이미 베이징으로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중국과 영국의 정보 관계자들은 헤이우드가 MI6(군사정보부 제 6부대)과의 관련성 때문에 살해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법원은 지난 8월 재판에서 구카이라이가 사업상 마찰로 헤이우드를 독살했다고 결론 내렸다. 구카이라이는 법원에서 헤이우드가 아들 보과과(薄瓜瓜)를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헤이우드의 지인들은 중국정부 측 설명이 매우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왕리쥔의 법원 진술서를 열람한 소식통에 따르면, 왕리쥔은 미 총영사관에 피신했을 당시 미 대사에게 “구카이라이가 스파이 한 명을 죽였다고 나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헤이우드는 지난 1990년대 보시라이가 다롄(大連)에서 시장을 지낼 때부터 보시라이 일가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으며 보시라이 일가 지인 및 조력자들로 이뤄진 내부 그룹 구성원이 됐다. 헤이우드는 영국 사업가들 뿐만 아니라 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영국 정치인들과도 접촉해왔다. 그는 MI6 관계자가 운영하는 기업 건물에서 영국 상원의원 한 명을 여러 번 만나기도 했다.

헤이우드는 살해되기 2년 전부터 보시라이 일가와 관계가 악화됐다. 구카이라이는 가족 그룹 내에서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 있다고 의심하면서 헤이우드에게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헤이우드가 이 사실을 MI6 관계자에게 알리자 이 관계자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헤이우드와 접촉은 멈추지 않았다. 지인들에 따르면, 살해되기 전 1년 동안 헤이우드는 보시라이를 만난 적이 없으며 그는 중국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가 즉시 중국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보시라이 일가가 자신에게 빚진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헤이우드는 자신의 이메일이나 전화가 감시 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갈수록 불안했다. 그가 작년 11월 13일 충칭으로 간 것은 보시라이 일가가 자신에게 빚진 돈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 있다고 한다.

NTDTV Kore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