诚宇:这些好人怎么都在监牢里
공산당의 고문 수법 안내도(명혜 사이트)
[밍후이] 사회의 바른 기풍을 위해서는 언론이 좋은 일, 좋은 사람을 보도하고 감옥이 나쁜 사람을 가두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선행으로 언론의 칭송을 받은 사람들이 감옥에 오래 갇혀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저를 도와주신 분을 찾습니다.”
올해 나이 64살인 스더리(司德利)선생은 허난성 신양시 스허구(河南省信阳市浉河区) 문화관 의 중요한 미술 담당자며 부 교수이다. 1996년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는 진, 선, 인의 표준에 따라 많은 좋은 일을 했다. 한 번은 그가 병원에 병문안을 갔다가 한 농부의 아들이 차에 쳐서 다리가 절단 되었는데, 가해 운전자는 도주했고 아이는 치료받을 돈이 없는 정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즉시 집에 가서 돈 5천 위안을 가져다 이 아이에게 준 후 이름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 이 일은 현지 TV방송국 핫라인에 보도됐다. “저를 도와주신 분을 찾습니다.”
또 한 번은, 신문에서 암에 걸린 처녀가 치료비 4천 위안이 급히 필요하다는 보도를 보고 추위도 마다않고 먼 길을 달려 처녀에게 1천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1999년 7월부터 줄곧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당해 여러 번 불법 수감 당했다. 2000년 7월과 2001년 3월에는 허난성 제3노동 교화소에서 노동교화를 당했다. 2005년과 2011년에는 정저우 감옥에서 각각 징역 3년, 징역 5년 6월을 당했다.
최근인 2016년 8월 29일, 신양시 스허구 법원은 불법으로 스더리를 재판에 붙여 그를 또 한 번 박해하려 시도했다.
“저를 도와준 리 선생님, 어디 계시나요?”
같은 일이 또 있다. 도움을 받은 이가 대중 언론을 통해 은인을 찾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은인은 장쑤성 쿤산시 공무원인 리지난(李纪南) 여사다.
리지난 여사는 오해 61살이다. 그녀는 1993년부터 산둥성 지멍산(沂蒙山)구 린수(临沭)현의 한 가난한 집 어린이 훙강(宏刚)의 공부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어린 훙강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리지난은 아무 대가 없이 경제적으로 그를 도왔고 늘 서신도 교환했다. 아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편지에는 답장용 우표도 동봉했다. 10여 년간의 후원과 교류로 두 사람은 모자지간 같은 정을 쌓았다.
2002년 12월, 리지난 여사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법적 근거 없이 체포 및 징역을 당하자 두 사람의 연락은 끊겼다. 다음 해, 훙강은 뛰어난 성적으로 텐진 공정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합격 통지서를 받자 바로 리 여사에게 편지 쓰는 것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편지는 우체국에서 “이 사람은 찾을 수 없음”이란 딱지가 붙어 되돌아 왔다. 훙광은 입학한 후에도 리여사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기자에게 알렸다. 2006년 3월 27일, ‘쿤산(昆山)일보’는 “저를 도와준 리 선생님, 어디 계시나요?”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서 훙광에게 리여사를 찾아주고자 했다.
그러나 리지난 여사는 어디에 있는가? 말하자면 너무도 이상하다. 그녀는 지금 중국 공산당의 감옥에 있다.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엄격히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살며 일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억울한 징역형을 내린 것이다.
리지난 여사는 다수의 학생들을 후원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녀는 남들에게 이 일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은 어쩌다, 그녀가 몇은 이미 취직했고, 어떤 애는 이직도 초등학교를 다니며, 훙강은 그 중의 하나라고 하는 말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농촌 아낙의 선행
간쑤성 파룬궁 수련인 왕즈란(王芝兰)은 아주 평범한 농민이며 그 본인은 부유하지 못하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늘 자신에게 진, 선, 인을 요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과 물건을 보내주고, 마을에 돈을 기부하여 길을 닦게 했으며, 원촨 지진 후 500위안을 기부했다. 한 농민으로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견한 일이다. 이 때문에 현지 Tv 방송국은 그녀에 대해 보도를 하고 그녀를 표창했다. 하지만 그녀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중공의 감옥에 감금당했다.
‘타이위안 석간’의 감동적인 보도
산시성 타이위안 이공 대학에서 서점을 경영하는 파룬궁 수련인 왕쯔강(王志刚)은 서적임대로 생계를 꾸렸다. 그는 1996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성실하고 선량하며,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지극히 풍부하다. 1998년 중국 남방에 초특급 홍수가 났을 때, 그는 재해 지구에 만 5천 위안을 기부했고 이는 당시 ‘타이위안 석간’에 보도됐다.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왕쯔강은 20전, 30전씩 책을 임대한 수입 몇 년 치를 전부 재해구역에 보냈다.
2008년 7월, 그는 파룬궁 자료를 배포하다가 체포당했고, 산시성 진중 감옥에서 3년 징역을 당하는 중 고문으로 두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무명씨를 위해 특별히 열린 기자 회견
뤼춘윈(吕春云)은 지린성 랴오위안 위생학교 교사이다. 파룬궁 수련 전에는 풍습병, 심장병, 산후풍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만여 위안을 들여도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1996년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몸의 모든 병이 기적같이 사라졌고, 신체 능력과 마음의 도덕성은 계속 상승했다.
1998년 지린성 랴오위안시에서 도로, 철로 입체 교차로 건설에 돈을 기부할 것을 호소할 때, 그녀는 자신의 반생에 모은 돈 6만 위안을 정부에 기부하여 입체 교차로 건설에 쓰게 했지만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녀는 랴오위안시 쉬정리(徐增力)시장에게 편지도 보냈다. 당시 랴오위안시는 특별히 기자들을 초대하여 그녀를 칭송하는 한편 시장이 받은 편지도 낭독했다.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리훙쯔 선생님의 학생입니다. 그의 ‘전법륜’ 공부를 통해 인생의 의의와 목적은 반본귀진(원래의 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대법이 나를 사리사욕의 인간으로부터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리훙쯔 사부님과 대법은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습니다.” 교차로에 새긴 비문 ‘무명씨’는 바로 그녀를 가리킨 것이다.
파룬궁 박해가 시작되자 뤼춘윈 여사는 4차례나 베이징에 청원 가서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밝혔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로 그녀는 납치, 노동 교화와 징역을 당했고, 아울러 정신 병원에 이송돼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여러 번 극히 해로운 음식물을 강제 주입 당했고, 랴오위안시 구치소에 있을 때 체중은 겨우 35킬로그램 밖에 안 되었다.
명혜 사이트에서 발췌